지구별 방랑자

뉴욕 여행기, 둘째날...

haleyeli 2008. 8. 17. 05:53

전날 워낙 피곤했던 터라 둘째날은 잠을 충분하게 자기로 했다. 10시 넘어서까지 실컷 자고 일어나
니 같은 호스텔 방을 쓰던 사람들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가져간 비디오도 좀 보면서 천천히 준비를
하고 12시가 다 되어서야 호스텔을 나왔다. 어제 봐두었던 델리로 가서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피자와 치킨 파니니,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얇은 빵 안에 치킨과 치즈, 야채등이 들어있는 거였는데
맛있었다. 디저트로 치즈케잌과 초콜릿 무스 비슷한것까지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일단 Penn Station으로 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선만으로 무작정 지하철을 타기에는 불안한 감이 좀 있어서 Informaiton
Desk로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둘째날은 소호, 그리니치 빌리지등이 포함된 다운타운을
돌아보기로 했기 때문에 일단 그리니치 빌리지를 먼저 가기로 했다.
그런데 Information Desk에서 노선은 알아놨는데 정작 1 Day Fun Pass를 어디가면 살 수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Station 곳곳에 있는 티켓 머신은 Amtrack Ticket을 위한 거였다.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모른다거나 신경질적인 반응만 보였다. 뉴욕에 와서 느낀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불친
절하다는 거였다. 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들을 해주지 않으니 나중엔 물어보기가 겁날 정도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몇 번을 물어본 끝에 간신히 지하철 개찰구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바로 개찰구 근처에 거의 티켓 머신이 있다는 것을 알
았는데 그때는 30여분을 헤매인 끝에 알게 된 거였다. 아침부터 진을 빼고서야 우리는 다운타운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의 Christopher Station에서 내렸는데 길거리 지나다니면
서 지하로 나 있는 조그만 구멍에서 사람들이 들고난다는게 무척 신기했던 우리는 우리도 막상 그
조그만 구멍으로 지상으로 올라온 것을 기념하게 위해 사진들을 찍어댔다.
나중에야 예사로 다녔지만 그때 우리는 그게 무척 신기했었다.

뉴욕의 다운타운 역시 LA 다운타운처럼 오래되고 낡은 도시였다. 길 역시 반듯하게 개발되지 못해
서 다른 곳들처럼 지도만으로 보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우리가 특별한 포인트를 알지 못해
서인지 볼것이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시의 풍경 자체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 자체
가 구경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LA에서 그런 풍경들을 많고 보고 살았던 우리들에겐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그리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미드타운처럼 고층건물이 없어서 햇빛가
리개가 되어주질 못해 무척 더웠고 전날 무리한 여파가 남아있어서 조금만 걸어도 너무 힘들었다.
더구나 나는 더 편하게 걷겠다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그게 굽이 좀 높고 새끼발가락이 계속 닿아서
벗겨졌다. 운동화 살 시간이 없어서 뉴욕 오는 날에야 사서 처음 신은 거였는데 그럴줄 알았으면
계속 슬리퍼를 신을걸 그랬다. 어제 신었던 슬리퍼 너무 편한 거였는데... 너무 힘들게 걷다가
Barns & Novel이 나오길래 들어갔다. LA Grove Mall에 있는 Barns & Novel처럼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3층에는 커피샵도 있을 거라 짐작해 책구경이나 좀 하면서 앉아서 쉬려 했는
데 생각과는 달리 규모가 너무 작았고 의자도 없었다. 결국 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 많
던 스타벅스는 왜 안보이고 잠바주스에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보이고 아무 곳이나 되는대로 헤매
다가 카페가 하나 보이길래 들어갔는데 뜻밖에 주인이 한국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일하는 사람
일지도... 굳이 한국말 할 생각은 안했는데(한국말을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해왔다. LA에서는 외곽에서 비즈니스 하는 한국사람들 중에 같은 한국인임을 핑계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지쳐서 한국사람임을 안 밝히는 이들도 있는데 이곳은 아직 그 정도로 사
람들에게 치이지는 않았나 보다. 그 분께 소호와 뉴욕대 가는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
명을 해주었다. 거의 한시간 가까이 앉아서 다음 스케쥴 상의하고 지친 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아까 지나쳤던 Barns & Novel 뒤편으로 서너블럭을 걸어갔더니 Washington Square
가 나왔다. 더워서 힘들었다가 시원스레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듯 했다.
바로 근처가 뉴욕대여서 그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뉴욕대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근처에서만
맴돌았는데도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뉴욕대를 지나 소호로 들어갔는데 물론 여러곳을 통해서 소호
가 많이 번화되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내가 생각하던 소호의 이미지는 찾을길이
없었다. 왠지 심란하기도 하고 괜히 왔다 싶기도 하고 그랬다. 소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와중에서도 숨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소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 안고 찾아들었던 초행길
여행자인 우리가 그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는 없었다.

다음 코스로는 차이나 타운을 가기로 했다. 지도를 뒤져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내 다시 지하철을 타
기 위해 내려갔는데 평소에 메트로 카드를 긁을일이 없던 우리가 계속 카드 긁는데 실패해서 안으
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뒤에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뒤에서는 자꾸 화를
내고... 결국 나중에 들어가려고 옆으로 비켜섰지만 뒤에 서있던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자기 카드를
긁어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그래, 고맙긴 고맙다만 뭐 그리 화를 내니. 나중에 생각해 보니 꼭 한
템포 늦는것이 문제였다. 카드를 긁어놓고 그대로 들어가야 하는데 한템포 늦게 들어가려니 걸려버
리는 것이다. 특히 다른건 괜찮은데 원형문으로 들어가는게 그랬다. 그건 나중에도 한번에 성공한
적이 없다. 생긴것도 갈퀴같은게 이상하게 생겼더라만...

차이나 타운에 도착했는데 어딘지 썰렁했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가게들도 거의 문을 닫았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유명하다던 공자 플라자를 가려고 지도를 열심히 봤는데 자세히
나와있지를 않아서 이쪽이려니 짐작만으로 길을 가면서도 조금 불안했다. 그래도 다행히 길을 제대
로 잡아 무사히 도착하기는 했는데 건물 앞쪽으로 공자 동상이 하나 덜렁 있는것이 이거 하나 보려
고 그 먼길을 찾아왔나 싶어 허무하기도 하고... 설마 건물 안이라도 볼 수 있겠지 했지만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았거나 닫고 있었고 공사중이라 분위기도 스산해서 들어갈수 있다 해도 그리 들어가보
고픈 기분이 들지를 않았다. 사실 힘들기도 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기가 죽어서 여기저기 보이는 중
국풍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냥 가자 하고 버스 노선을 훑어봤는데 잘 모르겠어서 지
하철을 타기위해 왔던길을 되돌아갔다. 차이나 타운은 어찌나 중국말 일색인지 LA 코리아 타운이
영어간판 없이 한국말만 즐비해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을 준다는 기사를 몇 번 읽은적이 있는데 그보
다 더했다. 분위기 스산하고 사람도 워낙 없고 저녁이나 먹고 갈까 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고 길거
리의 식당들은 그나마 들어가고픈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리 오래 있고 싶지를 않았다. LA 차이나 타
운은 딤섬 먹으러 몇 번 가봤을 뿐이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고 항상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위화감이
없었고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은 낮에 갔었기 때문에 사람이 복작복작 하고 구경할 거리가 있
었던 반면 뉴욕의 차이나 타운은 우리에게 그리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원래 갈때는 차이
나 셔츠도 하나 사고 싶었고 중국차도 좀 구하고 싶었는데 그쪽을 잘 아는 사람이랑 갔으면 좋았겠
다 하고 생각했다.

차이나 타운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까지 곧바로 올라왔다. 원래 소호와 차이나 타운에서
샤핑을 하려던 것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간단하게라고 타임스퀘어에서 샤핑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주위구경을 하며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어제도 왔던 곳이지만 어제는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걸
었기 때문에 역시나 새로웠다. 그림엽서 등에서도 자주 보곤 했던 풍경을 눈으로 보면서 걸으니 재
밌었다. 다운타운의 한적함에 조금 기가 질려 있었던 터라 원래 사람 많으면 정신 못차리는 나이지
만 타임스퀘어 풍경은 반갑기까지 했다. 사람들에 휩쓸려 걸어 올라가다가 46가와 8가쪽으로 걷게
되었다. 기념품 가게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길래 한번 들어가볼까 하고선 들어갔다. 뜻밖에 가격도
저렴하고 예쁜 것들이 많아 잘됐다 하고 선물을 사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티셔츠 몇벌
과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몇 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줄 키체인 몇 개를 사고 계산을 하는데 뜻
밖에 주인아저씨가 한국 사람이어서 택스를 깍아주었다. 가게를 나서 몇블럭 걸어가다가 용진이가
거스름돈 받지 않은것이 생각나서 도로 가서 거스름돈을 받고 덤으로 맛있는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
까지 알아냈다. 기념품 가게가 있던 8가를 바로 지나 8가에서 9가까지가 비싸고 좋은 여러 레스토랑
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한번 가보라고 했다. 하루 한끼는 좋은 음식을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향하며 그 기념품 가게가 문득 아쉬워졌다. 타임스퀘어 쪽에 있지만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고 안에는 좋은 물건이 많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허름해 보여 일부러 그쪽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
다. 우리역시 우연히 발견한 거니까... 용진이가 거스름돈 받으러 갔을때 주인 아저씨가 그렇잖아도
판게 별로 없는데 돈이 많이 남아 이상하던 참이었다고 말했다는걸 보면 장사가 그리 잘돼지는 않
는가 보았다. 자리가 좀만 더 좋았어도 좋았을 텐데... 이글을 읽는 분이 뉴욕 갈 일이 있으면 46가
와 8가쪽에 있는 그곳을 찾길 바란다. 7가쪽에서 8가쪽으로 가는 방향에 있다. 한국사람은 택스도
깍아준다. 택스, 그거 무시 못한다우...-_-;;;

아저씨가 일러준 방향으로 가며 배가 너무 고파 무얼 먹을까 내내 고민하다 브라질 바베큐를 먹기
도 했다. 남미식으로 절인 양파와 고기를 함께 먹으면 더 상큼하고 맛있다. 원래 살사를 곁들여 먹
으면 더욱 좋은데 찾질 못했다. 여러 종류의 고기중에 개인적으로는 제일 처음 나왔던 베이컨에 돌
돌 만 치킨과 이름은 모르겠는데 얆게 저민 쇠고기 스테이크 같은게 있었는데 그게 제일 맛있었다.
다른건 그저 그랬고 양고기는 도저히 입맛에 안맞는다. 양념만 잘 하면 양고기가 참 맛있다는데 나
는 양고기를 몇 번 먹어보지도 않았지만 먹을때마다 실패다. 베이컨이나 한번 더 먹고 싶었는데 도
대체 여기는 텀이 왜 이렇게 긴거야. 도무지 올 생각을 안해서 그냥 계산을 했다. 계산하다 보니 음
료수 리필이 공짜가 아니네. 샤핑몰에 딸린 푸드코트도 아니고 보통 식당에서 소다도 리필 공짜로
안해주는 데는 첨 봤다. 그나마 푸드코트들은 2,30전 정도면 리필 해준다. 그곳은 소다 하나값을 통
째로 받더라. 한잔에 2불씩... 거기가 어디냐구요? 46가하고 9가에 있는 브라질 바비큐 레스토랑인
Brazil, Brazil... 개인적으로는 고기맛도 LA 코리아 타운에 있는 M-Grill이 더 나았다우. 샐러드 바
도 훨씬 더 좋았구 치즈브레드가 참 고소했었지. 가격은 M-Grill이 조금 더 비싸다. 하지만 그걸 감
안 하더라도 나같으면 M-Grill로 가겠다.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브라질 레스토랑이 뉴욕 타임스퀘
어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기 비싸
다고 투덜거렸는데 이젠 투덜거리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종종 찾아 가야겠다.^^


둘째날의 마지막 코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가와 34가에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덜 걸을려고
34가까지의 한 정거장을 지하철을 타고 갔다. 34가에서 내려 5가쪽으로 걸어가는데 역시 Ave.는 사
람이 그리 많진 않더군. 6가에서부터 엠피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6가쪽으로 보이
는 출입문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마지막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시간이 11시 반이라고 들었는데 그
때 시간이 10시 정도... 설마 벌써 문을 닫았나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설마는 역시 설마...
5가쪽으로 정문이 있었다. 시티패스가 있었기 때문에 티켓을 끊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시티패스를 미리 구입해 놓은 것이 어찌나 다행이
던지. 그나마 엘리베이터를 타려고도 몇십분 정도 줄을 섰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강했다.
2중으로 줄을 서면 얼마냐 힘들겠냔 말이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80층으로 올라가서 한번 더 엘리베
이터를 타고 86층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어찌나 다닥다닥 한지 간신히 한자리를 부여잡을
수 있었다. 나는 전망대가 실내에 있는건줄 알았는데 철조망을 높이 쳐놓고서 바깥에 있는 거더라.
높은곳의 바람을 맞으면서 뉴욕의 야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진짜 예쁘긴 예쁘더라.
그런데 워낙 피곤해서 걷는것 자체가 힘들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바깥을 내다볼
틈이 없었다. 뉴욕에 산다면 한때 만이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야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대니 관광객들이 조용히 바깥을 내다보기는 힘
들테니 거기서 일하면 일과가 끝난후 조용하고 한적하게 뉴욕의 야경을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86층에서 80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한 대밖에 없다고 80층까지 걸어 내려가랜다.
아니, 사실은 일하는 사람이 가라는데로 갔더니 계단이었다. 겨우 여섯층 내려가는 데도 힘이 꽤
들었다. 사실 너무 오랜만에 걸어서 근육이 뭉쳐 당기고 있던 터라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 중간에 용진이와 운동화를 바꿔 신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날 버티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 거였다. 그덕에 용진이는 더 힘들었을 터였지만. 용진이 운동화가 편하더라구...-_-;;;

물을 하나 사가지고 5가쪽으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향했다. 택시비는 8불이고 팁을 1불
줘서 9불이었다. 사람이 셋이니까 나눠 내면 지치고 힘들때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호스텔로
들어왔더니 같은방을 쓰는 여자들 둘은 이미 불끄고 잠든 후였다. 지연이는 조용히 가방으로 챙겨
제 방으로 올라갔고 (지연이는 나중에 합류하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호스텔을 따로 예약을 해서
한방을 쓸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불 끈채로 로션 바르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더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