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도서/박규원] 상하이 올드 데이스

haleyeli 2008. 6. 29. 11:03

"상하이 올드 데이스"는 논픽션이고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김필순의 이야기, 두번째 그의 아들이자
중국에서 영화 황제의 삶을 살았던 김염의 이야기, 세번째 저자 박규원이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인 김필순과 작은 외할아버지인 김염의 삶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다큐성이 가미된 까닭에 비교적 감정선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이렇게 역동적이고
역사적이랄 수도 있는 이야기가 소설로 쓰여졌다면 아마 나같은 사람은
읽기를 포기하거나 닭살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 박규원의 외가는 그 집안의 역사가 곧 한국 독립 운동사의 역사라
할 정도로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집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역사의 시발점에 서있던 사람이 김필순이지만 그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인 김염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영화황제라 불릴 정도로
성공한 배우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그동안 중국과의 관계 때문인지
국내에선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몇년전엔가 어떤 잡지에서
그사람 기사를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며 그나마 기억이 났다.

박규원 집안의 제보로 김염의 이야기는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지기도 했는데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지만
오히려 박규원은 이때부터 집안 어른들의 일대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8년여동안 중국, 미국등을 돌아다니며 할아버지들의 역사를 추적해 나갔고
이 과정에서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집안 사람들의 몰이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자신도 모를 집념과 열정으로 결국 이 책을 탄생시킨다.

김필순 집안의 자식들은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었던
교육의 혜택을 누렸다. 그것은 확실히 혜택이었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중국, 미국, 남,북한에서 제각기 분리된 삶을 살아야 했다.
중국에 남아있던 김염은 말년이 되어서야 형제들과 간신히 연락이 가능했고
한국의 형제는 미국을 통해서 중국의 형제와 3자 편지를 주고 받아야 했다.
동생은 형 김염이 보낸 편지를 읽을 기력이 안돼 품에 품고만 있다가
세상을 떠났고(누가 읽어 주었을 수는 있다) 중국의 김염이 죽은뒤 그의
책상 서랍에서 동생이 보내준 돈 200달러가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북한으로 떠난 동생은 생사도 알 수 없다.

그 모든것이 하나의 인생이며 소중한 인생이다.
당사자들은 역동적으로 그 시대를 살았고 행복했을지 모르나 정작
글로서 그들의 행적을 읽는 나는 솔직히 눈물이 난다.
그들의 화려했던 시기보다 말년의 행적에 더 관심을 가지며 그 이면을
생각하는 나는 확실히 마이너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_-;;;

"상하이 올드 데이스"의 문체는 프로작가가 쓴것이 아닌만큼 평범하고 쉽다.
그러나 혈족에 관한 것인만큼 뭐랄까 절절한 애정이 배어난다.
사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그 시대에 관한 진지한 고찰이나 비판, 혹은
주인공들의 생에 대한 이면등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런것들을 알기 위해서라면 아마도 역사책을 뒤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들의 한 손녀가 오로지 조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만으로
스스로의 발품을 팔아가며 지극히 사랑을 담아 헌정한 책이다.
당연히 감탄과 찬사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 책은 또한 저자 박규원의 자신찾기로의 여행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넉넉한 집안의 중년의 평범한 한 주부, 아들 하나를 키워 유학 보냈고
서서히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되짚어 보기 시작한 시기에 만난 매력적인
두 인물의 생애에 빠져들면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의미를 키웠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글은 8/8/05년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