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도서/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

haleyeli 2011. 1. 30. 13:30

이 블로그엔 오래전 썼던 글들이 많은데 모두 옛날 홈피와
야후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옮겨놓은 것들이다.
그런데 나도 잊고 있던 옛날 글들이 더 있었다.
컴퓨터를 뒤지다 뜻밖에 옛날에 썻던 글들이 나왔다.
무려 7,8년전의 글들이다.
맙소사. 이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니...
오늘 올리는 글 몇개는 모두 몇년 이상 컴퓨터 안에 사장되어 있던 글들 모음이다.
따라서 현재 세태와는 맞지않는 부분도 좀 있을 듯...
기록의 의미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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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괄량이 삐삐하면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릴까. 자유, 유쾌함, 즐거운 고독...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해 삐삐는 내게 향수이다. 나는 그를 통해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꿈을 꾼다.
삐삐처럼 사는게 꿈이었던 어린 시절.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친구들의 꿈이 선생님이나 간호사였던 시절에 나는 삐삐를 꿈꿨으며 보물섬을 찾아가길 원했다.
비교적 철이 들만한 시기였던 중학교 이후까지도 그 꿈은 계속됐고 1년 1년이 흐르며
왜 내게 그런 모험이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시기를 지나며 나는 꿈을 잃어갔다.
그리고 요 몇 년은 삐삐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가끔 어린시절의 꿈이 로보트 태권브이를 타고 지구를 지키는 것이었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너 무지 황당한 애였구나’ 하며 웃는다. ‘내가 좀 깼었지.’ 하며 나도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의 끝이 너무나 씁쓸하다. 왜 그 꿈이 그토록 황당하며 터무니없어야 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서까지 보물섬을 꿈꾼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것일까. 나는 삐삐이고 싶었다.
그처럼 얽매임 없이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다. 삐삐일수 없다면 타미나 아니카이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그렇다면 모험의 끝자락이라도 얻어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일요일이 갖고 싶어 삐삐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의 달콤함을 갖기 위해
나머지 6일을 참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다시 날마다 일요일인 생활로 돌아간다.
그것이 삐삐의 미덕이다.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거나 그래서 삐삐가 깨달음을 얻어
모범생이 된다거나 하는 억지스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어른들의 희망에 반하는
삐삐같은 아이는 그러므로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이며 어른들의 영원한 꿈이다.
거기다 금화상자를 가지고 있는 부자어린이의 돈 씀씀이가 기껏해야 친구들에게
나눠줄 캔디 조가리나 사는데 쓰이다니 그런 삐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삐삐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다. 빨간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커다란 신발을 헐렁거리며
아빠가 왕으로 있는 식인종 나라를 여행하며 규율의 세계에 있는 타미와 아니카를 모험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들은 어른이 되지 않는 약을 먹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꼬마 흡혈귀 알리시아는 머리는 성숙한 채로 몸은 자라지 않는 자신을 참을 수 없어하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레스타트를 저주한다. 꼬마의 몸으로는 성숙한 여인의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인 그들은 어떨까. 나만의 이기심이라 해도 그들은 영원히 자라지
않은 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자식이, 내 손자가 나이를 먹어 그들보다 어른이 된다 해도
그들은 영원히 모험의 세계를 질주하는 유쾌한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피터팬이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네버랜드에서 돌아온 다른
아이들처럼 택시운전수나 교사 같은 직업을 가지게 되는 피터팬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아직도 말괄량이 삐삐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 꿈인것일까?



이 글은 2002년 8월 3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