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만화/강경옥] 별빛속에

haleyeli 2008. 6. 29. 10:44




'참 아름다운 별이다'로 시작하더니 '참 아름다운 별이다'로 끝나더라는
충격(?)을 던진작품. 아직까지도 그만한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



캐릭터...


시이라젠느(유신혜)
- 원래는 평범한 천문학 교수의 딸이었다.
어쩌면 카피온의 왕녀 사라를 만난 적이 있던 추억만을 간직하고 살수있는
평범한 소녀일 수도 있었는데 결국은 그러지 못하게 됐다. 주인공으로는
다소 모호한 성격이었다는 생각. 전형적인 소녀처럼 청순발랄하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자기 주장 똑 부러지는 타입도 아니고 가끔씩 레디온에게 희스테리
부릴땐 쟤 왜저러나 짜증이 나기까지. 어쨌거나 그녀는 카피온인이라기 보다는
지구인 이었나보다. 마지막에 '지구'라는 단서를 알려주지 못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난 이 소녀를 별로 좋아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가진
불행도 천문학적인 힘도 아니었지만 또한 새로운 세계에의 이질감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은 인정하지만 그토록 적응치 못하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임을
망각한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마치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나를 뒤흔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것 같이 행동하는
타입은 그리 마땅치 않다.


레디온
- 그야말로 충성충직의 대명사인 사람. 흑단같이 긴머리 휘날리며 주군을
위해 충성하던 '헤인 레디온' 처음엔 모호한 태도로 시이라젠느의 속깨나 썩이더니
결국은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바치며 자신을 위해 슬퍼하지 말랬던가 울지
말랬던가 하며 죽어간 남자. 흐음. 이 이상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는 레디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차라리 성장배경에 따른 그의 인격형성이나 깊은 속내
같은 것이 부각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저 대를 이어 충성한다는 이미지를 짖게
풍긴 이 사람은 원체가 선과 악이 혼재된 듯 왔다갔다하는 캐릭을 좋아하는 내게
별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충성하는
캐릭터는 그래서 현실적이지 않으며 그렇기에 내게 별로 어필되지 못했다.
카리스마 면에서도 오히려 아르만에게 밀렸다는 느낌.


아르만
- '별빛속에'를 통털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첨엔 단순히 잘생겨서(-_-)
좋아 했던 듯도 싶은데 암튼 첨엔 어쩌면 악역일수도 있겠다 싶게 등장해서는 곧
순정만화의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인 '여주인공에게 무한한 사랑을'의 길을 걷게
되는 남자. 사실 이 사람이 왜 시이라를 그토록 좋아하게 되었는가의 부분이 좀
미흡하단 감도 없진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레디온보다 이 사람에게 더 설득력을
발견했다.(왜 그랬는진 나도 모른다.)


아시알르 -
여성 캐릭터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첨엔 단순히 예쁘고 성격 나쁘고
욕심많은 그런 여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겪다보니 똑똑하고 자부심 강하고 무엇보다
제 조국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왕위를 놓고 시이라측과 전쟁을 벌이던 중에
이대로는 카피온에 너무 피해가 크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이 여자가
시이라보다 더 여왕 자격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긴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인으로
살아온 시이라에게 그런 조국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일수도 있겠지만...
시이라는 난세의 여왕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난세 이후의 정리와 통치는 아시알르
같은 인물에게야말로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왕 -
이름이 나왔던가? 나왔어도 잊어먹었다. 따지고 보니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자. 어머니로서는 실격인 여자. 아마 아시알르에게도 어머니로서의 따스한
정을 보여준 적은 없지 않을까 싶은 캐릭터. 그렇다면 여자로서는? 기레스를 그토록
애증에 휩싸이게 했으니 성공인가? 뭐 왠지 그런 듯 싶지 않기도 하지만...


기레스 -
마치 최고의 악역인 듯 싶게 등장해서는 허무하게 사라져간 남자.
최고의 궁금증. 여태까지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을 자기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토록 쉽게 태도가 바뀔수도 있는건가? 대신 죽을만큼? 그것도 '내 딸'이라 부르며
말이지. 그것이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시이라를
그토록 미워했는지의 이유조차도 불분명하다. 여왕과 닮았기 때문에 아시알르를
예뻐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단지 그 반대급부로 시이라를 미워하게 되었단 말인가?
흐음... 미스터리...



<별빛속에>를 중간에 끊김없이 전질을 다 볼수 있었다는건 분명히 행운이었다.
난 대작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을 중2 가을에 몰아서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별빛속에>역시 그 가운데 있던 작품이었다. 그때 본 작품들의
공통점은 내가 그 작가님들이 어떤 분들인지를 몰랐다는 것과 당연히 그 작품들도
어떤 것들인지를 몰랐다는 것.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별다른 기대없이 본 작품들이니
당연히 그 감동은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별빛속에>역시 별다른 기대없이 본 작품이었다.  그 전에 <현재진행형>과
<17세의 나레이션>을 너무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전학가서 다니게 된 새로운
만화방에 당시 21권이나 하던 <별빛속에>가 있었을 때 그 작가의 작품이면 최소한
실망은 안하겠지 하는 생각에 빌렸던 작품이었다. 과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어서 1권 뒷부분만 대략 훑어봤는데 여주인공이 배구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와서 이것도 학원물이겠거니 했다. 나중에 보니 커버가 심상치
않았는데(우주 나오고, 이상한 옷입고) 그땐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들도 챙겨보지
못했다. 다만 이미 학원물을 쓴적이 있는 작가이니 이번엔 좀 긴 학원물을
그렸나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과외가 끝난건 9시가 넘어서였고 책상서랍에 숨겨놨던 <별빛속에>를 꺼내며
읽다가 12시 넘으면 자고 낼 다시 읽어야지 했었다. 한권 보는데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도 않을 것이니 잘하면 12시까지는 다 읽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서 다 읽고 나니 새벽 2시였던가 3시였던가 암튼 시간이 꽤 흘러
있었는데 그 동안에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역사물도 아니요 학원물도 아닌 그 이름도 신선해 마지않는 SF.
물론 남성만화가들의 작품 역시 즐겨 봤으므로 그다지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읽었던 수많은 SF들을 다 갔다대도 모자랄 것 같은 그 스케일과 섬세함과
가슴 메어짐과 허무한 관조들... 그림이 단순히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수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눈을 보면 왜그리 슬프고도 답답해지던지. 대사도 없이 그냥
서있기만 하는데도 그 눈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이는 감정을 느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 지구에서 다시 한번의 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시이라.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를 잊은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다가
순간 흐르는 눈물. 그러다 하늘을 보며 '참 아름다운 별이다' 하는데 순간 첫 장면과
매치되는 것이 가슴 싸한 감동이. 같은 하늘이며 같은 말인데도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무엇보다 시이라는 유신혜가 아닐 것이고 이젠 옆에 아버지도 없고
그리고 중요한 사람 하나를 잊고 있을 것이고... 그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첨엔 차라리 죽이지 했었는데 살아 있어서 더 그런 엔딩이 연출되지 않았던가 싶다.


아, 사실 지금의 나는 참 세속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유신혜가 살았던 시대라면 오랫동안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어 있었을 것이니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족도 없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제대로 공부를 했을리 만무하니 대학은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한때는 왕녀였으며
카피온을 구했다는 사람이 구차한 목숨 부지하자고 궂은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을 연출해야 하나 하는 뭐 그런...-_-;;;


아마도 신일숙님의 <1999년생>과 함께 후속작 논란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겨 놓자는 생각. 어떤 후속작이 나와도 전편의 감동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즘에 와서는 메카닉적인 부분들이 논란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사만호의
그 무게감 없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은 요즘에 보기엔 촌스럽기는 하지.
그렇다해도 그당시는 자료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강경옥님은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SF가 아닌 그안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에 더 비중을 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한면에 치중하다보면 다른 한면은 포기할수도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말이다.  


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카피온의 신은 지구의 신과도 일치하는 것일까.
시이라와 그 숱한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모두 신의 손바닥 놀음인걸까. 여섯살때 유치원에 갔다 오다가
가게에 들러 캐러멜을 하나 샀었는데 문득 내가 오늘 유치원 갔다 오다가 캐러멜
사는 것까지도 모두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일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해일리는 성당 부속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선생님들이 엄마말씀 잘듣고 착한
일해야 훌륭한 사람되고 천당 간다고 그랬었다. 그런데 또한 하느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정해놓은 대로 산다고 그랬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내가 착한애가 될지 나쁜애가 될지 모두 정해 놓았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에 닦던 이 안닦고 하던 세수 안하고 그랬었는데(내가 어떻게 해도 다
정해 놨다매? 하는 생각에...) 그러다가 내가 이런 생각 하는 것까지도 또 하느님이
정해 논건가 하는 생각에 무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어린 마음에 내린 결론은 이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까지도 정해놨나보다
하며 하던대로 살자였는데(안하던 행동 하기가 그리도 힘들더이다. 이래서 주입식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폐해를 만듭니다. 하느님이 정해 놓기는 했는데 왜 정해
놨는지는 설명을 안해줘서 어린 것이 그 혼란을 겪었으니...) 아마 그 어린 생각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는 않았던 듯 싶다.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단짝에게 한번
얘기했다가 개무시 당하고서 혼자서만 간직해오다가 나중에 <별빛속에>에서도
그 비슷한 생각이 나오길래 어찌나 반가웠던지... 결국 결론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마음에 덜 쓸쓸해졌단 기억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리던 유치원 시절만큼도 진지하지 못한 것 같다.
무조건 쉽게쉽게, 그러면 그런가부지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1/25/2002 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