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만화/하루노 나나에] 파파 톨드 미(papa told me)
haleyeli
2008. 6. 29. 10:33
Papa told me를 처음 대했을 때 느낀 감정은 '박제된 안틱'같다는 거였다.
작가 아버지와 조숙한 딸 치세의 유난한 사랑과 그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는
뭐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본만화의 한 전형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행복이 가득한 집>, <앙상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잔잔한 수채화같이 묘사한 전원느낌의 이야기.
아름답지만 가슴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이 가득한 집>과 <앙상블>은 아직 나온데까지 다 읽지도
못했다. 예전의 경험으로 이런종류의 만화는 한꺼번에 쌓아놓고 보기보다는
한번에 서너권 정도씩 읽는 것이 내게는 적당하다는 것을 알았던 탓에 나는
그 만화들을 만화방에서 볼것이 없을 때 몇권씩 집어들고 온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기여한 바가 크다.
처음에 그 만화를 5번까지 읽었는데 당시 너무 재밌게 읽었었다.
그후로 한동안 볼 사정이 못되다가 완결 뒤 6번부터 끝까지를 한꺼번에
빌려와서 읽었는데 왜 그렇게 길던지...-_-;;;
내 마음엔 동화가 살 구석이 없나보다. 아, 물론 재미가 없다는게 아니다.
다만 그런 스토리들에 감동을 받기엔 이미 내 심장이 굳어 버렸다는 거다.
짐작해서 처음에 세권, 그다음 세권, 그다음 두권, 그런 식으로 읽었다.
그렇게 8번까지 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내 예상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 세권을 읽을때는 약간의 짜증까지 났었다.
부녀의 유난한 사랑은 거의 배타적 수준이어서 그들 주위의 그들의 사랑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하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나 몇권인지는 모르겠는데
치세가 학교에서 치세야, 하고 불리면 대답을 하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그 이유가 다름아닌 치세야, 하고 부를수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그만 한숨이 나왔다. 사람의 사는 방식을 다른 사람이
뭐라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명백한 오버다.
치세야, 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호칭이 아닌 이상 그렇게 불릴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거다. 그럼 그때마다 대답을 안할건가?
이유를 물어도 말해주지 않은채? 그 모든 사람들이 치세 학교의 교장선생님처럼
어린아이의 동화를 이해해 주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런다면
그런 태도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내가 지나친 오버일 수도 있겠다. 아니, 사실 좀 오버하는 것 같다.
어린이의 순수를 이렇게까지 매도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눈에 띄는 것들을 그냥 넘기기에 나는 무척이나 쪼잔한 것을...-_-;;;
치세의 자신의 동화를 지키기 위한 그런 행동은 다른이들을 상처입힐 수 있다.
치세의 그런 태도에 다른이들이 상처 입는다면 그건 그들이 못나고 이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세가 다른이들을 배려하지 못한 탓이다.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채 알아서 알아먹길 원하는건 지나친 오만이다.
자신의 아빠가 다른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여자가 생기는 것은
더더욱 용납 못하고(사실 여자 부분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볼 때에는...
훨훨 날아가는 딸과 쓸쓸해할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_-)
그런 모든 것들이 한량없는 사랑에 의해 용납되고... 지나치게 조숙한 그런 아이,
가끔씩 떼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어른들에게 훈계도 하고 영리하고 어질르지도 않고 팔딱거리지도 않고...
지나치게 보는 눈이 높아 부담스러운 아이. 아무리 만화가 모든 현실을
반영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지만 이건 지나치게 어른들의 틀에 짜맞춘
이상적인 아이상이 아닌가 말이다.
흐음... 이렇게까지 쓰고보니 내가 Papa told me를 무척 싫어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이 만화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축에 속한다.
잘 꾸며진 서양식 고급 안틱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만화는 사실 그다지 상류층의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 세련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가졌다.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아빠와 지나치게 조숙한 딸이 등장함에도 허둥대지 않고
질퍽대지 않고 청승맞지 않고 깔끔하고 우아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세련된 양장본을 읽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다른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똑같은 가족애라도 <아기와 나>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아,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유리코이다.
치세의 고모이며 유능한 노처녀 커리어 우먼. 때로 자신의 나이를 버거워 하며,
사랑을 꿈꾸며 때때로 현실의 벽에 부딪치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자신이 그다지
싫지 않다고 나직하게 말하는 그녀.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지만 천천히 조용하게
자신을 길을 걷는 그녀는 내가 Papa told me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일하다 사랑하다 결혼하는 여자가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고
이 만화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처럼 마키바 신키치를 짝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어서이기도 하다. 하긴 자신의 친오빠를 짝사랑하는 분위기의 만화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가 사랑하는걸 반대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분위기라면
사랑하더라도 사랑에 눈멀어 다른것들이 다 의미 없어지는 캐릭터는 아닐거 같아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결국 Papa told me에서 내가 발견한 진주는 치세도
마키바 신키치도 아닌 유리코가 되고 말았다. 뭐, 그것이 별로 싫지는 않다.
이 글은 11/16/2002 에 작성한 글입니다.
2004년의 시점으로 덧붙이는 사족...
이 책을 안본지 꽤 오래 되었다. 뭐 그래도 처음의 느낌과 그다지 틀려지지는 않았는데
그후로 열권정도를 더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확실히 부녀 이야기보다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맛이 있었다.
현재는 대여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잘'이라는 말은 가끔은 이용한다는
뜻도 되는데 사실 나는 내가 읽는 모든 만화책을 전부 사서 읽을 만큼의
여유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금의 만화현실을 생각한다면
이런 얘기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움은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무척 길어질 얘기이므로 나중에 따로 글을 작성하는 편이 낫겠다.
어쨌건 근본적으로 나는 대여점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내가 직접 구입하는 책과 만화는 보통수준보다는 넘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경우 빌려보는 것과 사서보는 것의 구분이 매우 뚜렸한데
돈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맘놓고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봐야겠는 경우는 도서관이나
대여점을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정말로 최악의 작품일 경우라도 욕을 하기 위해서라도 봐야하는 경우가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는 것만큼 무식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일반인들이 그런 구분을 잘 해준다면, 그래서 사야할 책은 살 만큼의 정신적
성숙도가 이루어진다면 지금같은 현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같지는 않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열권의 책을 사는 사람보다 백권의 책을 사면서도 가끔씩이라도
대여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비난받을 수 있는 현실이 탄생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권도 안 사보면서 대여점 책 마저도 자기돈 주고 보기는 아깝다고
친구가 빌려온거 뺏어읽는 사람들은 확실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꼭 옷 살돈은 있더란 말이지...
-이 글은 3/28/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