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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이미 교황이셨던 분.

유아세례를 받은 카톨릭이면서도 종교 자체에 꽤나 시니컬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차라리 샤머니즘 쪽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온갖 신비주의와 음모론 등에 열광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근간을 흔들어대는
얘기들에도 두 눈을 반짝이곤 했었다.
도대체가 오랜 세월을 이어온 그 거대조직에 먼지나올 구석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게지.

그러나 그 모든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나름대로는 교황님을
꽤나 존경하고 있었나보다. 고인이라 하여, 신의 대리인이라
하여 모든 것을 하나로 볼 생각은 없으니 그분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그러나 그분은 꽤나 매력적인 한 '인간'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있는 현대의 카톨릭.
미국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문에 침묵했고 여성의 신부서품을
거부했던 보수적인 교리인.
그러나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과거 카톨릭의 과오를 참회했고
유대교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달라이 라마와도
만남을 가졌던 진정 열린 세계인.
'불신지옥, 예수천국'만을 외쳐대는 소수의 편협한 종교인들에게
제발좀 본받아 달라고 간청하고 싶은 열린 사고.

최근의 너무나 힘드신 모습들을 보면서 교황위를 선위하지 않는
이유가 주님의 뜻으로 앉게된 자리를 인간의 뜻으로 내려올수
없는 영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불순한' 이유인지 솔직히
의심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가셨고 그분이 가시는
길에 남긴 말은 내게 진심으로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요 며칠 폭풍과도 같은 파도를 겪었다.
심장이 사정없이 끄집어내져 파헤쳐지고 너덜너덜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제대로 말할수 없다는 것이, 이해받기 위해선 할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결국 애초에 입도 떼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헤진 심장을 안고 혼자서 낡은 마음을 추스리며 교황께서 남기신
큰 축복에 마음을 맡겨 본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대리인으로 떠나가신 분.
세계인의 아버지로서, 이름뿐이 아닌 온몸으로 이 시대를 살아낸
진정한 평화의 상징으로서, 때로는 그 역시 인간이기에 겪었을
그 마음의 고초와 시련들을 모두 떠안고 우리는 진정한 이 시대의
참어른을 신께 돌려보낸다. 부디 영면하소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나역시 행복하다 말하며 떠날수 있는 진정 어른이 되고 싶다.



         -이 글은 04/03/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