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이 격하되기 마련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역사를 좋아하거나 특히 고대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를 국수적이다, 혹은 고리타분하다 라고 인식되기까지 한다.
글로 쓰여져 있는 기록은 각각 그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다른 해석을 가질수
있으며 각자의 정치적 목적에 맞추어 윤색되기도 한다.
특히 한,중,일 3국의 고대사에 관한 인식은 현재까지도 첨예한 논쟁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나는 역사를 매우 좋아하며 오랜 세월동안 역사학자가 꿈이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허탈해진다. 찬란했던 고대가, 혹은 수치스러웠던 역사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역사가 중요하긴 한가벼.. 생각할수 밖에 없게 되는것이
고대사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것이 한국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등에서 역시 수도없이 되뇌어지는 고대사. 워낙 사료가 불분명한 탓에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얼마든지 자국에 유리하게 각색되어 질 수 있는 역사.
나역시 한국인인 까닭에, 또한 한자를 읽지 못하는 까닭에, 한국말로 씌여져 있는
한국사를 읽으며 한국에 유리하게 해석되어지는 역사를 읽어왔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내가 알고있는 사실들 역시 얼마나 진실인 것일까.
나름대로 객관성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봐 왔다고 자위하면서도 오랜세월 나는 그런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그건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발굴되어지는 유물들과 기록의 흔적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부족한 역사관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적어도 중국기록들에 의해 보여지는 한국은
꽤 많이 윤색되어 있음이 틀림없는듯 싶다. 그 대표적인 예가 풍납토성의 발굴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비친 백제는 서기3,4세기 경까지 변변한 성곽도 없는 초기국가였다.
그런데 1995년(맞나?)에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추정되어지는) 풍납토성이 발굴되었고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풍납토성이 이미 2,3세기 경에 완료되었음이 밝혀졌다.
풍납토성은 기존의 학설을 뒤엎을 만큼 거대한 규모였고 그 시기 거대한 성곽이 지어졌다면
국가의 확립은 그보다도 전일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풍납토성은 엄청난 수의 인원이
(백만명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던듯 싶은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동원되야 했던 대공사라고 한다. 그런 인원을 동원시킬수 있는 정치세력이 이미 그당시
백제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믿을수 밖에 없는것이 탄소연대 측정이라는 과학적 방법이다.
내가 과학에는 문외한이니 자세한 사항은 잘 알 수 없다만 결과적으로만 말하자면 탄소연대
측정은 유물, 유적의 조성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며 그 오차범위를
감안하더라도 꽤 믿을수 있는 과학적 근거라는 것이다.
실증, 합리성을 운운하며 이미 드러난 사실도 믿을수 없다며 침묵하거나 오히려 매도되는
역사학계의 편협성을 꽤 적절하게 침묵시킬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라는 책을 소개하려 이 긴 사설을 써내려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한국 고대사에 등장한 일식등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발생유무를 가려낸다.
그 결과 한국측 기록의 80%, 중국측은 75%, 일본측 기록은 35%의 일식이 진짜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삼국사기등에 등장하는 일식기록이 모두 날조된 것이거나
중국측 기록을 베낀 것이라는 관측이 이로써 빗나간다. 오히려 중국측 기록보다 정확성이
높으며 중국의 기록들이 제각기 분산된 장소에서 일어난 사실의 기록인 반면(꾸준히 관측을
할만큼 통일된 정권이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고 어디에서 일어났다더라 하는 식으로
후일 기록된 것이 많아서라고 한다) 삼국의 기록은 오랜 세월동안 동일한 장소에서 꾸준히
관측되어진 결과물이다. 일본의 경우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것이 35%의 정확성은 그렇다 치고
그나마도 동남아등에서 이루어진, 절대로 일본땅에서 나타날 수가 없는 기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가져다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수 있겠다.
삼국의 일식기록을 측정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는데 백제와 신라의 경우
일식의 최적관측지가 모두 중국대륙 동부에 존재한다. 저자인 박창범 교수가 뭔가 오류가
있나 의구심에 고려, 조선, 중국의 기록들까지 면밀히 조사했지만 모두 확실했던 반면
백제와 신라의 경우만 예상과 달랐다 한다. 백제는 그나마 대륙백세절이라도 존재하니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있지만 신라의 경우는 스스로도 의문점이 많으며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풀어낼 숙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2002년에 출판되었고 박창범 교수는 이미 90년대 중반 이 연구결과를 학계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접한 학계의 반응은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는
적고 있지만 앞뒤전후를 살펴볼때 뜨뜻 미지근했던 듯 싶다.
글쎄, 별로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나 보다.
일하면서 종종 방송국의 지나간 동영상들을 듣곤 하는데 얼마전에 KBS의 TV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에 이 책이 등장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었던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영상을 듣던 나는 매우 답답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 프로그램에는 저자인 박창범 교수와 다른 역사학자(이름을 모르겠네요) 한분이
참석했는데 그 역사학자는 계속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것을 베꼈을 확률이
높으며 그 연구의 결과를 믿을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박창범 교수에게 중국이나 다른쪽의 기록까지 모두 살핀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당연히 모두 했으며 그런것을 묻는것은 자신에게 네 할일을 제대로
했느냐고 묻는것과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한시간짜리 토론이었으므로 내 정리에도 약간의 각색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요점은 이러했다.
박창범 교수는 자신은 단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고대의 천문학적 기록을 관측했을 뿐이며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역사학계가 할 일이다.
면밀히 연구한 결과 근거가 없다면 모르되 단지 드러난 관측결과만을 가지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 물을수는 없다.
근데 역사학계에선 그렇게 하는가 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고. 이건 말이 안된다고.
아니 글쎄, 말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연구해 봐야 알 일이잖아?
자신들이 아는것과 다르다고 말이 안된다고 하는것이 말이 되는 일이냐고...-_-;;;
박창범 교수가 그러더라. 그 연구결과에 오차가 발생할 확륙은 0.몇 퍼센트라고...
몇달전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지리적 상식들이 모두 어처구니 없을정도로 오류
투성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해방 50년이 지나도록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채 일본인들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해 왔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지리는 눈에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조금만 신경쓰고 인공위성만 제대로 돌려도 알 수 있을 사실들이 무관심과 학계의 이익에
걸려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이었다.
그런데 역사는 이미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다. 몇줄의 기록과 몇개의 유적만
가지고 모든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 행위들이 단순히 과거를 좋아하는 자들의 취미생활
이라고만 받아들여지기엔 저 옆나라 들에서 그 과거에 쏟아붇는 행위가 너무나 버겁다.
고천문학만 해도 저 멀리 서양까지 갈것도 없이 중국, 일본에서는 이미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천문학자가 이해관계 없이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
연구한 결과물이 박대를 당하다 못해 사장되어지고 오히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눈초리까지 받고 있다.
우리끼리 그러다 말면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어느날 아무것도 모른채
당할수 있다는 것이다. 고천문학? 그게 뭐야? 하는 사이에 마구마구 들이밀어지는 자료들에
의해 정신없이 당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 역시 이미 고천문학을 앞서
연구하고 있던 중국과 일본측에 의해 중국것을 베낀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던 상태라고 했다니 말이다.
나는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민족의 위대한 기상 어쩌고 운운에는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된채 조작까지 당하는건 싫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연구의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것이 후회없이 공부한 결과라면 어쩔 수 없다.
우리의 고대사가 우리 생각만큼 자랑스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깍여지고 조작되는 것은 싫다. 그것은 직업윤리에도 어긋난다.
풍납토성 발굴의 일등공신인 이형구 교수는 발굴전 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당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이형구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이 누구지요?' 하며 무시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에서 발췌)
적어도 그런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소박한 바램이다.
내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중에 진실이 아닌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또한 내가
모르는 진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진실은 과연 저 너머에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그럴수 없다고 말하고 싶고 또한 믿고 싶다.
-이 글은 7/4/05년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