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2008. 6. 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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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는 하디와 함께 한 집앞에 서있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으로 보이는
그 집에서 가장이 출근을 하고 그의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그를 배웅한다.
그와 레이아가 스쳐 지난다. 그가 지갑을 떨어뜨렸던가.
레이아가 그에게 지갑을 주워준다. 그안에 깊숙이 들어있던 갓난아기의 사진을
레이아가 봤던가 어떤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그들이 스쳐 지나가며
중년신사는 중얼거린다. '저소녀 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
갓난아이의 사진으로밖에 그들은 만난적이 없었으니까.
괜히 강한 혈육의 끌림 어쩌고 하는 설정을 넣었더라면 그보다 더
부자연스러울 수는 없었겠지. 어쨌건 레이아는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었다.
할렘 출신이었지만 부자인 양아버지를 만나 유년 시절을 지낼수 있었고
다행히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친자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친아들인
라몬보다도 더 아낀 듯이 보였지만, 또한 어머니의 사망이후 레이아는
누구도 뭐라는 사람 없는데도 스스로 그집을 나왔지만 그 아버지의 죽음앞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눈물을 흘릴수 있었을 것이다. 의붓동생인
라몬의 침입역시 반갑게 받아들일수 있었겠지. 라몬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싫어한 의붓누이였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친척들보다도
그녀가 더 순수하게 자신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세월을 같이 산다는건 그런 것이다. 비록 어쩔수 없는 끌림에 아버지를
찾아나서고 돌아서지만 그녀는 같은 세월을 살았던 유년시절의 가족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누가 생기라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그런 애정이 말이다.

흐음... <이카드입니까>의 주제가 이런 것은 아니었단 생각이 이만큼이나
써놓고 나서 드는건 왜일까...-_-;;; 어쨌건 나는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니까... 변명이라도 늘어놓자...--

할렘 출신이라는 것이 계속 콤플렉스가 되어 레이아를 짓눌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곱게만 자라지 않았던 이력이 납치 당해서도
배고픔을 느낄수 있을 정도의 신경을 길러주었고 창문 밖으로 살짝 보이는
풍경이 어디를 뜻하는 것인지도 그녀 콤플렉스의 근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납치범중의 한명이었던 그...(이름 잊어먹었다...-_-)의
도움을 얻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결국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던가...

능글능글 팔자좋은 놈인줄만 알았던 하디 노크먼. 사실 그레이 허슨보다도
이녀석이 내겐 더 어필했는데 어린시절 영재의 말로(?)란 그런 것이었던가...-_-;;;
그에게도 고난의 세월이 있었겠지. 스스로 실망하고 절망하다가 가슴이
짓눌릴 정도로 압박감에 시달리고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스스로
얻어낸 삶의 방식일 것이다. 조금 더 덜 괴롭기 위한...

레이아가 그레이를 걸고 한 내기가 탄로 나고 홈커밍에서 돌아오던 그 썰렁했던 차안...
그리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튀어나오던 그 노래. 빌리 조엘의 honesty.
얼굴 빨개지던 레이아와 쿡쿡거리던 그레이.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설정이 아닐까.
정말 백마디 말보다도 더 압도적으로 다가오던 상황설정이었다.
그림을 최고도로 이용해 압축적이고 의미깊은 장면을 연출해내는 강경옥식
그림체의 저력은 데뷔작에서조차도 그 빛을 발휘했다. 그후로 느낌만 가지고 있던
honesty를 처음 듣게 된건 몇 년뒤였는데 처음엔 평범하게 들려오던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나는 honesty를 honesty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카드입니까>의 honesty이기에 좋아하는 것인가 보다.

데뷔작임에도 흔히 신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설픔과 상투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완전한 틀을 갖추기 전이지만 그래도 강경옥식 심리묘사와 상황설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렇게 기초를 다져나가며 강경옥님은 그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켜 나갔나보다. 역시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자고로 맞나보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 않은가 말이다.^^


이 글은 9/26/01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