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는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프랑스 혁명이 근대를
일으킨 시민 정신의 산물이었다고만 볼수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중인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처음엔
그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길어지고 그들의 후손들이 일정한 교육까지 받아 알게 되는 것이 많게
되는 시점에 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귀족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먹을 것이 없어 포화 직전이던 백성들은
그들의 좋은 타겟이 되어 주었다.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백성들에게 그들은 아주 좋은 지도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자 그들은 이제 그만 하고 싶어했고 아직 가지지 못한자들은
계속 나아가길 원했다. 이것이 그후 거듭되는 파행에 대한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지나친 비약이라 할까? 물론 때가 되었으니 일은 났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순수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순전히 나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집단 행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한들 일어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창한 목표의식보다 단순한 욕심이 더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먹힐때가 있다. 아는 것 많고 가진 것 많으니 귀족이 되길 원하면 어떻고 먹고
살길 없으니 먹고 살 것을 요구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이제까지 가진 것 많았던
이들에게 우리도 좀 나눠 갖자고 요구한들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또한 그리 잘난체할 일도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마치 순교자인양
스스로에 대한 세뇌에 취해서 피에 젖은 길로틴을 내리치며 파행을 거듭하는
정부를 간신히 유지하다 결국은 또 황제를 맞이하는 뒷일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테르미도르>는 그런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사색적인 혁명가
줄르가 등장하고 피에 젖은 상큘로트 유제니가 등장하며 또한 단순히 복수심만으로
혁명의 반대편에 서는 알뤼느 같은 여자도 등장한다.
나는 줄르를 참 좋아한다. 귀족으로 태어나 충분히 먹고 살 것 많았음에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혁명을 선택한 남자.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환상에
젖어 있었을지라도 그래서 혁명이 자신의 가진 것을 도륙내며 아버지까지
살해하는 것을 지켜보며 절망할지라도, 혁명의 순수하지 못함을 괴로워하며
비난할지라도, 결국 그것이 그의 태생적인 한계일지라도 적어도 타락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상을 끝까지 유지하는 남자. 온유한 부드러움 속에 강철같은 펜을
지니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그것을 자신의 성장으로까지 발전시킬수 있는 사상가.
그리하여 진정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줄르 프랑소와 드 플로비에.(풀네임이 이게 맞을까?-_-)
유제니에게 그의 길은 처음부터 그것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버려진 사생아.
가진 것 없는 상큘로트. 그런 그에게 어찌 환상과 이상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혁명이 그이고 그가 곧 혁명인 것을. 그러기에 혁명이 그를 버렸을 때 그는 곧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꿈은 아주 소박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배고프지 않은 세상을 꿈꾸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아주 작은 소망
하나를 더해 레몬이 열리던 숲에서 뛰어놀던 소녀의 곁에서 살수 있기를 원했을 지도...
세자르 시락... 그는 <테르미도르>를 읽으며 얻은 귀중한 선물이었다.
혁명을 꿈꾸며 혁명을 노래했던 시인. 그러나 변질되어 가는 혁명에 절망하다가
결국 혁명에 의해 살해당하고 마는 혁명시인. 그러나 그래도 혁명을 사랑하여
열월의 길로틴 아래 한송이 제비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읆조리던 그.
사형 선고를 받으며 그가 쳐다보던 먼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그곳에서 절망을 보았을까 희망을 보았을까.
그들은 아마도 세모속에 네모를 넣을수도 있고 네모속에 세모를 넣을수도 있던
시절을 살았나 보다. 천년의 세월을 일년에 밀어 넣으려던 스스로를 찬란한 신의
이단아라며 자조하던 그들은 그 시절의 광기와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부산물인
것일까. 그러나 적어도 가볍고 무책임한 입술들에게 멋대로 떠들지 말라고
일갈할수 있던 그들은 떳떳하다.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그 시절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테르미도르>에서 얻은 작은 즐겨움은 역시 생 쥐스트였다. 단지 예뻤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일리가 총애해 마지않던 그는 <테르미도르>에서도 역시 등장신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했던 말을 잊을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이만 되었으니 그만 돌리자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멀었으니 미친듯이
계속 돌리자고 한다는... 결국 그말이 혁명의 본질이고 또한 <테르미도르>를 유유히
관통하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아, 알뤼느는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북해의 별>의 에델보다야 발전했을지 몰라도
알뤼느는 약혼자를 잃고 혁명의 반대에 섰다가 사랑에 의해 다시 노선을 바꾸는
주체성 없는 여성으로밖에 내게 어필되지 못했다. 알뤼느가 소서노가 되려면 아직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하는 것인가 보다.
이 글은 8/16/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