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 혹은 바스티유의 죄인...
잠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로 살았던 여자. 빵을 달라던 백성들에게 그렇다면 과자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는 지위에 걸맞지 않는 철부지. 백성들의
괴로움을 모르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결국 프랑스 혁명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여자.
그러나 또 한가지를 생각해본다. 그녀는 프랑스의 왕비였다. 잘못된 번역인지
모르겠으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도 종종 등장했던 전하나 폐하가 아닌 그저
왕비마마, 즉 프랑스 왕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의 왕은 그녀가 아닌 프랑스인들조차
그는 미워하지 않았다는 무능했으나 자상하고 인간미 넘쳤다는 그녀의 남편,
즉 루이 드 오규스트인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족으로서의 에티켓과 음악소양, 댄스 등등에 대해 교육받았을
것이다. 프랑스로 시집을 와서는 아마도 거기에 더해 왕실 웃어른으로서의 처세법
등등에 대해서도 배웠겠지. 그러나 모르긴 해도 아마 그녀의 수업중에 정치나 경제에
대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왕될자, 혹은 왕된자의 몫이었다.
프랑스는 유럽의 절대왕정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었다.
물론 왕비로서의 입김은 존재했을지 모르나 또한 아무리 왕이 무능하고 왕비가 기가
셌다 하더라도 감히 '여자' 따위가 설치고 다닐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단 얘기다.
정치는 그녀의 몫이 아니라 그녀 남편의 몫이었다. 즉 프랑스 경제와 정치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정치하는 남자들이었다는 얘기다. 사치가 심해서 나라를
망쳐 먹었다고? 세상에, 그 많은 빚들이 전부 왕비의 드레스 값으로 나갔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한들 왕비가 그런 파행을 거듭하게 놔둘만큼 프랑스 궁정엔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그녀 남편은 뭐하고 있었나. 알았다면 말렸어야 할 일이고 몰랐다면
그 또한 무능함의 소치다.
왕 된 자가, 온 백성의 빵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정치는 뒤로 미뤄두고 대장간에서
열쇠나 만든다? 그러면서 검소하고 자상한 우리 왕이라고? 그것이 정상적인 행태인가?
그것은 왕비의 사치보다 더욱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설사 보통사람이라 할지라도
책임감이란 것은 그 사람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런
최소한의 책임은 뒤로한채 사람좋은 미소나 지으며 열쇠나 만들었던 사람에게 자상하고
따뜻한 우리 왕이라니... 왕실의 파행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것이다. 사치와 향락의
상징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태양왕 시절에 완성되었다. 그가 설치했다는 수십개의
분수대는 그 물값을 감당하지 못해 특별한 날에만 가동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왕비의
휴식처인 리틀 트리아농 궁의 전원풍경에 들어간 돈보다 훨씬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았을 것이다. 태양왕 시절에 이미 국고는 찌들었으며 정치와 경제는 파탄이 났다.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횡령 또한 위험수위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왜 마리 앙투아네트인가. 아무리 그녀대에 혁명이 났다한들 그 비난의 강도가
너무 세다. 하물며 그녀 남편에 대한 비난은 별로 찾아볼수 없는데 비해 그녀는 마치
오로지 혁명의 이유가 그녀인 것처럼 몰아붙혀진다.
아마도 어쨌거나 조용했던 프랑스 왕보다는 그녀의 행동거지가 훨씬 더 튀었다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거기다 자존심 드높은 유럽의 최강국 프랑스의 왕비가
스웨덴 백작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있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한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오스트리아 여자'
라는데에 기인할 것이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원래 서로 천적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오랜 전쟁이 있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국혼이 성사되었다. 결국 그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선택된 존재였고 그것이 틀어졌을 때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래도 프랑스인인 그들의 왕보다는 그 옆에 존재하던 철천지 원수
'오스트리아 여자'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로 쏟아진 것이다. 실제로 그녀를 지칭하는
욕 중의 하나가 바로 '오스트리아 여자'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그녀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폄하되는 것이 약간의 불만이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왕이 아니었다 한들 그녀는 왕비였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백성들 눈에 그토록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주로 태어나
왕비로 살아간 그 여자가 배고픔이 뭔지 몰랐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백성의 세금으로 배부르게 먹고 사는
자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적어도 빵이 싫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말은 한 나라의
왕비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고 변명할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처음부터 프랑스 궁정의 최고 지위에 있는 여자였다.
겨우 열다섯 나이에 왕세자비가 되어 열여덟에 왕비가 된 그녀에게 지도자로서의
도리와 의무를 일러주는 이가 없는 환경에 그녀는 처해 있었다. 또한 뒤늦게 파견된
어머니의 충신의 충고를 받아들이기에도 그녀는 프랑스 왕실의 화려함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사실 그만큼 성실하지도 못했다. 그녀에게 책임감이란 채 깨우치지 못한
단어였고 또한 참을성이 필요없는 환경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변명들만으로 모든 것이 덮어지기엔 달려있던 목숨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이 몇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
자신들의 비싼 옷과 음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았더라면 말이다.
그런 지위따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비천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 역시 없다. 지배자의 의무와 책임에 힘들어하며
허덕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인 것이다.
어쨌건 결론은 그녀 때문에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던 것을 그녀가 있었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녀는 차라리 평범한 귀족으로
태어나 살았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아무래도 그녀의 사람됨에 비해 그 자리가 너무
넘쳤다. 그렇더라도 너도 불쌍하다고 재수 드럽게 없었다고 그렇게 넘어갈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쨌건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시절을 살았으니 말이다.
이글은 8/16/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덧붙임, 때아니게 프랑스 혁명 얘기라...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테르미도르>에
대한 소개글을 쓰다보니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듯 싶어서. 두 작품이 같은 시대를
다루었음에도 이 여자를 보는 눈이 참 틀리기에... 그만큼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겠지요.^^
마치 혁명과도 같은 정치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내 조국을 보며 과연 지금 이 순간이
과도기인가 혁명기인가를 생각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지금 이루어지는 모든 행태가
모두 어느 책에선가 한번씩은 봤던 것들이다. 정치가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같은짓으로 자승자박 한단 말인가.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써먹었으면 좋겠다.
잠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로 살았던 여자. 빵을 달라던 백성들에게 그렇다면 과자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는 지위에 걸맞지 않는 철부지. 백성들의
괴로움을 모르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결국 프랑스 혁명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여자.
그러나 또 한가지를 생각해본다. 그녀는 프랑스의 왕비였다. 잘못된 번역인지
모르겠으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도 종종 등장했던 전하나 폐하가 아닌 그저
왕비마마, 즉 프랑스 왕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의 왕은 그녀가 아닌 프랑스인들조차
그는 미워하지 않았다는 무능했으나 자상하고 인간미 넘쳤다는 그녀의 남편,
즉 루이 드 오규스트인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족으로서의 에티켓과 음악소양, 댄스 등등에 대해 교육받았을
것이다. 프랑스로 시집을 와서는 아마도 거기에 더해 왕실 웃어른으로서의 처세법
등등에 대해서도 배웠겠지. 그러나 모르긴 해도 아마 그녀의 수업중에 정치나 경제에
대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왕될자, 혹은 왕된자의 몫이었다.
프랑스는 유럽의 절대왕정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었다.
물론 왕비로서의 입김은 존재했을지 모르나 또한 아무리 왕이 무능하고 왕비가 기가
셌다 하더라도 감히 '여자' 따위가 설치고 다닐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단 얘기다.
정치는 그녀의 몫이 아니라 그녀 남편의 몫이었다. 즉 프랑스 경제와 정치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정치하는 남자들이었다는 얘기다. 사치가 심해서 나라를
망쳐 먹었다고? 세상에, 그 많은 빚들이 전부 왕비의 드레스 값으로 나갔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한들 왕비가 그런 파행을 거듭하게 놔둘만큼 프랑스 궁정엔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그녀 남편은 뭐하고 있었나. 알았다면 말렸어야 할 일이고 몰랐다면
그 또한 무능함의 소치다.
왕 된 자가, 온 백성의 빵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정치는 뒤로 미뤄두고 대장간에서
열쇠나 만든다? 그러면서 검소하고 자상한 우리 왕이라고? 그것이 정상적인 행태인가?
그것은 왕비의 사치보다 더욱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설사 보통사람이라 할지라도
책임감이란 것은 그 사람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런
최소한의 책임은 뒤로한채 사람좋은 미소나 지으며 열쇠나 만들었던 사람에게 자상하고
따뜻한 우리 왕이라니... 왕실의 파행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것이다. 사치와 향락의
상징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태양왕 시절에 완성되었다. 그가 설치했다는 수십개의
분수대는 그 물값을 감당하지 못해 특별한 날에만 가동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왕비의
휴식처인 리틀 트리아농 궁의 전원풍경에 들어간 돈보다 훨씬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았을 것이다. 태양왕 시절에 이미 국고는 찌들었으며 정치와 경제는 파탄이 났다.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횡령 또한 위험수위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왜 마리 앙투아네트인가. 아무리 그녀대에 혁명이 났다한들 그 비난의 강도가
너무 세다. 하물며 그녀 남편에 대한 비난은 별로 찾아볼수 없는데 비해 그녀는 마치
오로지 혁명의 이유가 그녀인 것처럼 몰아붙혀진다.
아마도 어쨌거나 조용했던 프랑스 왕보다는 그녀의 행동거지가 훨씬 더 튀었다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거기다 자존심 드높은 유럽의 최강국 프랑스의 왕비가
스웨덴 백작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있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한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오스트리아 여자'
라는데에 기인할 것이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원래 서로 천적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오랜 전쟁이 있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국혼이 성사되었다. 결국 그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선택된 존재였고 그것이 틀어졌을 때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래도 프랑스인인 그들의 왕보다는 그 옆에 존재하던 철천지 원수
'오스트리아 여자'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로 쏟아진 것이다. 실제로 그녀를 지칭하는
욕 중의 하나가 바로 '오스트리아 여자'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그녀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폄하되는 것이 약간의 불만이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왕이 아니었다 한들 그녀는 왕비였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백성들 눈에 그토록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주로 태어나
왕비로 살아간 그 여자가 배고픔이 뭔지 몰랐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백성의 세금으로 배부르게 먹고 사는
자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적어도 빵이 싫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말은 한 나라의
왕비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고 변명할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처음부터 프랑스 궁정의 최고 지위에 있는 여자였다.
겨우 열다섯 나이에 왕세자비가 되어 열여덟에 왕비가 된 그녀에게 지도자로서의
도리와 의무를 일러주는 이가 없는 환경에 그녀는 처해 있었다. 또한 뒤늦게 파견된
어머니의 충신의 충고를 받아들이기에도 그녀는 프랑스 왕실의 화려함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사실 그만큼 성실하지도 못했다. 그녀에게 책임감이란 채 깨우치지 못한
단어였고 또한 참을성이 필요없는 환경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변명들만으로 모든 것이 덮어지기엔 달려있던 목숨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이 몇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
자신들의 비싼 옷과 음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았더라면 말이다.
그런 지위따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비천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 역시 없다. 지배자의 의무와 책임에 힘들어하며
허덕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인 것이다.
어쨌건 결론은 그녀 때문에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던 것을 그녀가 있었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녀는 차라리 평범한 귀족으로
태어나 살았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아무래도 그녀의 사람됨에 비해 그 자리가 너무
넘쳤다. 그렇더라도 너도 불쌍하다고 재수 드럽게 없었다고 그렇게 넘어갈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쨌건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시절을 살았으니 말이다.
이글은 8/16/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덧붙임, 때아니게 프랑스 혁명 얘기라...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테르미도르>에
대한 소개글을 쓰다보니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듯 싶어서. 두 작품이 같은 시대를
다루었음에도 이 여자를 보는 눈이 참 틀리기에... 그만큼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겠지요.^^
마치 혁명과도 같은 정치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내 조국을 보며 과연 지금 이 순간이
과도기인가 혁명기인가를 생각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지금 이루어지는 모든 행태가
모두 어느 책에선가 한번씩은 봤던 것들이다. 정치가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같은짓으로 자승자박 한단 말인가.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써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