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엔 오래전 썼던 글들이 많은데 모두 옛날 홈피와
야후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옮겨놓은 것들이다.
근데 나도 잊고 있던 옛날 글들이 더 있었다.
컴퓨터를 뒤지다 뜻밖에 옛날에 썻던 글들이 나왔다.
이 글은 무려 7년전인 2003년 6월 28일에 써놓고 잊어먹고 있던 글이다.
맙소사. 이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니...
오늘 올리는 글 몇개는 모두 몇년 이상 컴퓨터 안에 사장되어 있던 글들 모음이다.
따라서 현재 세태와는 맞지않는 부분도 좀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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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처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대중과의 괴리를 유도한채 신화가 되어버린 사람.
그러나 그의 시작은 대중적 파격이었다. 그의 본질이었던 록을 잠시 손에서 접어둔 채
그는 힙합가수로서 엄청난 부와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는 다시 시작했고 이제는
그가 어떤 음악을 만들어도 그에겐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바탕엔 <난 알아요>의 대중성과 신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 그의 행보에서 서태지를 읽는다면 지나친 비약이라 할까.
그의 데뷔작인 <드래곤 라자>는 누가 읽어도 재밌고 유쾌한 대중적 소설이다.
재기발랄한 문장과 톡톡 튀는 캐릭터들. 누가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드래곤 라자>의 후속이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퓨처 워커>는
뜻밖에도 시간의 난해함을 다룬 작품이었고 다음 작인 <폴라리스 랩소디>는 자유와
복수를 다룬 난해무쌍한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은 한발 진보된 완성도와 함께 탄탄한 재미도 갖췄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 매니아의 필독서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모색기를 거쳐 <눈물을 마시는 새>가 등장한다.
판타지 소설치고는 무척이나 시적인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이영도라는 작가의
진보와 저력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유쾌했던 데뷔작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바로 그 하고 싶은 말에 눌려버린
듯한 느낌을 줬던(물론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으로 보여지는) 후속작들의
한계에서 벗어나 이영도는 드디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해냈고 그 안에서
어렵게 빙빙 돌리거나 철학적 수사들을 남용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 싶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국형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이제 더 이상 엘프나 드워프, 호빗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도 친숙한, 씨름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도깨비가 활동하며 마립간,
마루나래와 같은 전통적 용어들이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한다. 또한 작가는 새로운
종족을 창조해낸다. 심장을 적출하는 불사의 몸을 가진 나가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이 나가라는 존재들이 차용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와 함께 이 나가들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
물론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반 소심하면서도 진중하던 륜의 성격이 그가 용인이 되면서부터 평면적으로 바뀐 것이라던가
<드래곤 라자>에서부터 변함없이 등장하는 긴 세월을 살아가는 고독자라던가, 별로 말재주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엄청난 독설가가 된다던가 하는 것은 작가의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던
고질적인 아쉬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작가의 신작들을 읽을때 마다 그런 아쉬움들이 진일보한 반가움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영도라는 이름 석자에서 나는 한국 판타지의 미래를 읽는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쓸 것이다. 그는 독자에게 믿음을 주는 작가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독자가 있는 한 그는 행복한 작가다. 그러므로 그의 내일을 믿는다.
더 반가운 작품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 글은 200년 6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그 후로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가 나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