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방랑자2008. 8. 17. 05:31
2004년 8월 말에 여행한 옐로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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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진이가 비행기 안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발견하고 한장 찰칵했다.

우리가 타야할 솔트레이크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은 아침 9시 반이었다.
예전 같으면야 한시간 전에만 가도 충분하겠지만 테러이후 이것저것이 복잡해져서
두시간 전에는 도착하는게 좋다고 한다. 나로서는 꼭두새벽인 5시 40분에 일어나
부산을 떨어댄 결과 7시 조금 넘어서 LAX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를 내려다 주고 그냥 돌아가시는 아빠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택시 타고 오려고 했던건데...

티켓을 받아들고 보니 이름 스펠링이 틀려있었다. Kwon, Mi Jung의 J가 G로 되어 있었다.
우째, 이런일이... 원래대로라면야 문제가 될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단체에 묻혀 큰
문제없이 넘어갈수 있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신발까지 벗으라고 한다. 듣기는 했지만 당하는건
처음이라 조금 얼떨떨... 하지만 별수 있나. 힘없는 중생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신발까지 벗어서 통과시키고 나는 빈몸으로 덜렁덜렁 검색대를 잘 통과했는데 글쎄
용진이(이하 애칭인 진과 용진이란 호칭이 왔다갔다 공존할 것이다)가 잡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도대체 왜? 하며 진이 행식을 돌아다 보니 아닌게 아니라 잡히게도 생겼다.
오버롤을 입고 갔거든. 아빠 입원하셨을 때 오버롤을 입고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병원
검색대에 오버롤에 붙은 버튼들이 싸그리 걸려서 결국 옆으로 빠져서 따로 검사를 받았던
적이 있다. 어쨌건 나는 먼저 신발 찾아 신고 짐 내리고 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진이쪽
검색원이 남자였던 지라 여자 검색원이 봉을 들고 와서 진이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삑삑삑삑' 뭔가 정신없이 울려대기는 하는데 걸리는 것마다 버튼이니 처음엔 근엄하던
표정의 검색원, 결국에는 어이없이 웃어버린다. 잔뜩 쫄아있던 용진양, 그제서야 배시시
슬그머니 따라서 웃음을 흘리고 옆에 어리버리 서있던 나도 실실 같이 웃었다.
어떻게든 잘 보여야 비행기 탈것 아니겠냐구.-_-;;;
혹시 어디 다른 방으로 끌고가서 옷을 다 벗겨보지는 않을까, 최악의 경우에는 비행기를
못타는건 아닐까 노심초사 했던 약간의 긴장을 뒤로한채 진이는 풀려나왔다.
그 모양을 디카로 찍어놨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잠시 스쳤지만 사실 그때는 그럴틈도
없었다. 거기다 그 흑인아줌마 어찌나 무서워 보이던지 디카 들이댔다간 박살날 분위기
이기도 했다.

암튼 약간의 소란을 뒤로 한채 대기실에 도착하니 8시쯤 되있었다. 진이가 아침을 먹자고
한다. 나는 원래 아침을 안먹는 지라 옆에서 약간만 뺏어먹으려고 햄 & 치즈 크로와상
한개와 오렌지 주스 하나를 샀다. 겨우 그거 두개 샀는데 10불 가까이가 나온다.
LA 두배는 되는것 같다. 이 날강도들. 하지만 워낙 렌트비가 비쌀테니까... 애써 이해하며
여행에 들뜬 맘으로 용서해줬다-_-;;;

아침엔 물도 못받아들이는 뱃속에 소량이지만 빵과 주스가 들어갔더니 아니나 달라,
속이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이러게 평소에 안하던 짓은 하면 안돼. 화장실을 몇번
들락거리는 사이 탑승이 시작되었다. 얼른 가서 줄을 섰는데 탑승때도 아이디를 요구한다.
스펠링이 틀린 아이디가 조금 걱정됐지만 그곳에서는 무사통과, 정작 그 다음에 있던
간이 검색대에서 걸려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번엔 용진이는 그냥 갔는데 내가 왜? 하는
마음도 잠시, 나는 대열을 이탈해 옆으로 끌려나갔다. 걸린 이유는 아직도 모르겟는데
백팩에 들어있던 셀폰때문이 아닐까 생각만 한다. 매고있떤 백팩을 벗어 검사를 하게 주고
나는 옆에 서있던 여자 검색원에게 갔다. 자리에 앉으라더니 신발 벗고 다리 들어올리고
양팔 벌리고 뒤로 돌아, 앞으로 돌아 생쇼를 한다음 그 검색원은 내 배까지 몇번 꾹국
눌러보더니 풀어준다. 아니 민망하게시리 배 만져봐야 잡히는건 살빡에 없을텐데...
나름대로 웃겨보겠다고 오버하며 배를 움겨쥐고 과장되게 웃어보였지만 돌아오는건
싸늘한 무반응.... 더욱 민망해진다.-_-;;; 그래, 너 잘났다 속으로만 욕하면 백팩을 집으러
가니 백팩을 검사한 검색원이 어이없이 웃고있다. 그안에 든게 과자와 책밖에 없었거든.
옷을 비롯한 다른 짐들은 진이가 끌고들어간 여행가방에 있었고 내가 든 백팩에는 과자와
퇴마록 국내편, 세계편 일곱권, 기호학과 신비주의에 대한 책 하나, 만화책 닥터 스쿠르
다섯권이 들어있었다. 검색원이 여행에 관한 책들이냐고 물어버기에 대충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백팩을 짊어지고 얼른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로 일단 들어서고 보니 진이와 내 자리가 거의 끝에서 끝이었다.
진이는 13A, 나는 26A. 아까는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건데 암튼 꽤 멀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하고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다시한번 어쩔수 없었다.
워쩌겄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쩝...  나중에 안 사실인데 테러 이후 일행들을
대부분 떨어뜨려 앉힌다고 한다. 붙어 앉아서 뭔짓을 할수도 있기 때문이라나?
발권받을때 특별히 부탁하지 않는한은 붙어앉기 힘들다고...
흥, 우리가 어딜 봐서 테러하게 생겼냐?  아니, 어쩌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일들을 겪으며 생각한 게 있었거든. 뭔일을 저질르려면 단체에 묻혀라.
그럼 스펠링 틀려도 봐준다. 무기같은건 버튼에 숨겨라.  그건 걸려도 봐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물론 이때 가장 중요한건 착하게 생겼을것.
우리 봐라. 얼마나 착하게 생겼나...-_-;;;

어쩔수 없이 따로 자리를 잡고서 나는 들고온 주간지를 읽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길래 잠시 창밖을 내다봤지만 속도가 느리길래 신경 안쓰고 다시 주간지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순간 몸이 뒤로 밀리는 바람에 조금 놀랐다.
에구, 하고 있는데 약간의 압력과 함께 비행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거대한 LA가 금새 장난감같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며 고도가 높아졌다.
내가 바로 가운데 큰날개 옆에 앉아있어서 날개의 움직임이 매우 잘 보였다.
나중에 착륙할 때도 어디가 열리고 올라가고 하는지 유심히 잘 봐둬서 논문을 써도 될
정도였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다 잊어버렸다. 그래 이미 열흘 지났다.
시간은 기억상실제다... ㅠㅠ
비행기가 떠오르고 얼마 안되었을 무렵 비행기 날개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다.
어, 비행기 날개에서는 연기가 나는구나 무심코 생각하다가 어, 원래 연기가 나나... 하다가
생각해보니 그것이 구름이었다. 우째 이런일이... 그래, 나 비행기 오랜만에 타본다...-_-
주간지를 다 읽고 퇴마록을 읽기 시작하는데 뱃속사정이 다시 안좋아진다.
옆에 앉은 백인커플은 우아하게 책보고 있는데 나혼자 배 부둥켜앉고 이리저리 뒤틀어
대자니 심히 자존심이 상해왔지만 어쩔수 없었다. 진짜로 속이 쓰렸단 말이다.
위염이여, 만성질환이여, 이런때는 제발 눈치있게 낮잠좀 자라.
정녕 니들은 예뻐해 줄수가 없는 존재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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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솔트레잌 시티 전경. 역시 진이가 찍었다.

1시간 14분의 비행시간이 바람때문에 20여마일 정도 늦어진다고 방송이 나왔다.
어차피 한시간 가량이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내가 책을 볼때만 집중력이 너무
좋은 나머지 언제 착륙한다는 방송을 못 들은거다. 고도가 낮아지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잠시 책에 눈을 돌린사이 그만 또 집중을 해버려서 방송도 못 듣고 정신없이 책보고 있다가
갑자기 '쿠구궁' 소리와 함께 심하게 흔들리며 착륙을 해버리는 바람에 놀라버렸다.
이제는 기필코 방송을 잘 듣고 말리라 결심을 했지만 도착했으니 안녕히 가시라는 마지막
방송만 나오는 바람에 허탈해져 버렸다. 꽥~~~

나가려고 줄을 서는 동안 밖을 내다보니 땅이 젖어있는 것이 비가 왔나보다.
옆에서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LA에서 비앵기를 탈 때쯤 이곳에는 폭우가 내렸단다.
안그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쳐서 다행이라는 마을 들으며 아닌게 아니라 나도 다행이라
고 숨을 내쉬었다. LA에서 오면서(그것도 여름에) 우산같은걸 챙겨 왔을리가 없잖아...

차례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진이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쌀쌀한 바람이 느껴진다. 맨발의 슬리퍼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양말도 안챙겨 왔건만 설마 계속 이러는건 아니겠지 하는 약간의 불안한 마음과 함께
들고있던 얇은 재킷을 챙겨입었다. 미정이와 용진이의 옐로스톤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osted by haley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