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 작품을 대함에 있어 괜찮네... 라는 표현이 있을수 있다면 아주 좋다...
라고 생각되는 표현도 있다. 그리고 때때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조금은 씁쓰
레한 표현도... 대체적으로 이런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즉 내게 있어 아닌
작품도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고일수 있으며 또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작품역시 내게 있어서는 최상급일 수도 있단 얘기다. 그런데 흔히들 '대가'라고
호칭되는 이들에 오면 그 급수가 달라진다. 모든이들에게 최상급은 아닐지라도
대체적으로 그들의 작품이 독자들을 실망시 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본다.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는 한분이 있다. 그리고 한때는 내게도 최상급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요즘에 들어서는 차마 겁이
나서 그분의 새 작품이 나와도 책장을 들춰볼수가 없다. 분명히 단발머리 중학
생 시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보며 가슴 찡해했고 <불새의 늪>을 보며 종
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을텐데... 아마도 이분에 의해서
흑발 냉미남과 금발 온미남의 분류가 오랜 세월 만화계에 자리잡고 있을수 있
었겠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왜 그럴까. 왜 그런 일이 벌어진걸까. 왜 그토록이나 남자주인공은 80년대의
바람머리와 나팔바지를 휘두르며 숯댕이 눈썹을 늘어뜨린채 그토록 고독한
표정을 지어야 하며 왜 그리도 눈물은 자주 흘리며... 아니 흘리는 정도가 아
니지, 아주 입을 크게 벌리고 통곡을 하곤 했지. 특히 <레드문>에서는...
오, 신파여...
많은 이들에게 <별빛속에>에 버금가는 SF역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레드문>을
보면서 난 필라른가 윤태영인가 하는 애가 왜 그리도 많은 무게를 짊어지고 가
끔씩 눈물 뚝뚝 떨어 뜨리며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처럼(사실 하기는 했지.)
그리도 괴로워 하는지 이해를 할수 없었다. 내 이해력이 엄청 딸리기라도 하던지
나는 이애에게 도무지 감정이입을 할수 없었다. 그애의 행동반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단 얘기다. 어디선가 읽었다.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보여준다고...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한 캐논 일행도 결국은 필라르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 지나친 억측일까. 많은 매력적
인 인물이 등장함에도 나는 시종일관 <레드문>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가
이게 열여섯권이나 끌어올수 있는 스토리였던가가 매우 헷갈렸단 얘기다. 그러므
로 불행히도 난 필라르가 흰머리로 등장하는 엔딩에서도 쇼하네 하는 이상의 느낌
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황미나님을 처음 접한건 초등학교 3학년때였을 것이다. 그때 친구에게 소년
경향인가 하는 만화잡지를 빌려 읽었는데 거기에 황미나님의 <꿈으로 가는 기차>
가 실려 있었다. 그땐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난 독고탁을 좋아
하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그 다음이 보물섬의 <녹색의 기사>던가... 가끔씩 친구
에게 빌려 읽은 보물섬이기에 역시 가끔씩 보게 되는 <녹색의 기사>는 나름대로
볼 만했다. 몇호를 건너서 볼때도 스토리 이해에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드디어 중학교 2학년때에 이르러서야 나는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미스터 블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원래 매력적인 주인공보다는 그 주변
인불에 더 정이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이 작품을 즐기
는데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는 역시 흑발 냉미남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르미안...>이나 <별빛속에>를 재미있게 볼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어쩌면 아르만과 미카엘이 불쌍해서라도 더 열심히 봤을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는 아트레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배신과 증오, 역사와 로망. 열네살 어린 가슴에 이보다 더 설레이는 단어가 있을까.
같은 역사물인 <불새의 늪>을 보면서도 아마도 나는 한동안 내가 그시대 프랑스
역사의 주인공인양 상상도 하곤 했겠지. 물론 난 프로테스탄트는 아니었다. 구색
으로나마 유아세례를 받은 카톨릭이니 자신의 명분을 갖춘 카톨릭 지도자였을 것
이다 난... 사실 난 <불새의 늪>의 등장인물들이 왜 종교운동을 벌이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거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듯 싶다. 그들의 종교와
가치관, 행동들의 당위성보다는 처음부터 구교는 나쁘고 신교는 옳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았었나 싶다. 아, 그때 한가지 궁금했던 것. 그들은 죠엔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를 쌍둥이 오빠의(이름 까먹었다.-_-;;;) 대타로 삼기로 하
고 길렀다. 그런데 왜 어려서부터 쌍둥이 오빠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교육시키지
를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나중의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말이다. 뭐 그
이유야 작가님만이 아시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방랑의 광시곡>까지는 약발이 먹혔던 듯 싶다. 오히려 <불새의 늪> 보
다는 <방랑의 광시곡>을 더 좋아했단 기억이 난다. <엘 세뇨르>에서 난 후작을
좋아했다. 그가 세뇨르가 잡혔을 때 했던 말인데 아마도 대충 (넌 아마도 네 부하
가 잡혔더라면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잡힌 지금 넌 그
들에게 널 구하러 오지 말라고 한다. 넌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네
가 가지고 있는 그런 생각 자체가 차별이다.) 이말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
했던 말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작가님은 <엘 세뇨르>를 통해 인간과 계급, 차별
과 평등을 표현하려고 했던 듯 싶다. 세뇨르의 심복이 죽었을 때 그를 붙들고 슬퍼
하는 세뇨르를 보고 한 아낙네가 내 남편이 죽었을 때는 저렇게 슬퍼하지 않았다고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혹은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옛것들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영웅
담과 구태의연함으로 인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엘 세뇨르>는 전작
의 아류라는 평을 벗어나지 못한채 사장되었다. 똑같이 중2때 보았지만 <굿바이 미
스터 블랙>에는 열광했고 <엘 세뇨르>에는 담담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약 한학
기 정도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한학기 정도의 시간에 난 그토록 변덕스러워진 것일
까. 그 사이에 보았던 <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때까지도 정점에 올라있던
열정이 그 이후로 급속히 사그라들었으니...(참, 어린 허영심을 채워주었던 작은새를
스물이 넘어서 다시 본적이 있다. 그냥 내가 어른이 되서 그런가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_-;;;)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스스로 쌓아올린 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분은 나에게 '성'이었으니까... 그런 그분의 작품을 상대로
감히 본전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건 미국으로 막 이민왔을 무렵이었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한달에 20불짜리 버스패스를 사서 그것만 있으면 무한정으로 버
스를 탈수가 있었는데 난 아직 버스패스가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한달치 버스비
를 한꺼번에 받아놓고 있었다. 그당시 버스비는 한번 타는데 1불 25전, 두 번 타
는데는 1불 50전이었다. 지금은 10전씩 더 비싸다.
어느 하루 학교에 안가던 날 만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받아놨던 버
스비를 들고 가서 빌렸던 것이 <수퍼트리오>였다. 그걸 다 보고 다시 한번 도전
해보자 하고 같은날 다시 빌렸던 것이 <파라다이스>... 그렇게 나는 한달치 버스
비를 날렸다.
그리고 본전생각에 이를 득득 갈면서 엄마한테 차마 만화책 빌리느라 버스비를
다 썼으니 돈을 다시 달란 말을 못하고 괜히 애꿎은 동생을 시켜서 런치티켓 한달
치를 잊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해서 점심값을 타내도록 해서 그돈으로 학교를 다녔
다. 공짜 런치티켓이 날짜별로 박혀서 일년치가 한꺼번에 나오는데(밥먹고 살기도
힘든 저소득층 대상이지만 일일이 검사를 하지는 않으므로 적당히 인컴을 써서 내
면 대부분 나옵니다. 요즘은 좀더 검사가 철저하다고 들었지만 그 많은 학생들 일
일이 검사하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히려 한국 애들은 고학년이 되면 지들이 '쪽'
팔리다고 알아서 안먹는다. 나나 내동생들도 11학년 되면서부터는 안 먹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보통 아까운게 아니다.--) 보통 일주일이나 한달치만 가지고 다녔으
니까. 그당시 나는 런치티켓도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내가 뻥을 칠수도 없었다.
'거짓말'과 함께 내 성은 무너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건간에 그분이 '거목'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듯 싶다. 아마도 남자
들에게 있어 가장 친숙한 여성만화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성만화가들중 소위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만화가 천대받던 시절에 조금이나마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일조를 한
분이기도 하다. 그후의 작가들은 그를 모델삼아 습작을 하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만화계에 힘든 시절이 있었고 아마도 그는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내며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의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내게 충분하다.
- 황미나 선생님의 작품목록(해일리가 읽은것만...)
애수의 교향시, 아뉴스데이, 다섯 개의 검은봉인, 꿈으로 가는 기차, 녹색의 기사,
불새의 늪, 굿바이 미스터 블랙, 엘 세뇨르, 방랑의 광시곡, 메이저에서 마이너까지,
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웍더글 덕더글, 무영여객, 태백권법, 그랑프리,
취접냉월, 스턴트맨 스턴트걸, 상실시대, 슈퍼트리오, 파라다이스, 윤희, 레드문,
이씨네집 이야기
이글은 8/8/2001에 작성되었습니다.
사일런트 마이너리티2008. 6. 28.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