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2008. 6. 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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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나비같이>는 내가 철 들어서 본 최초의 순정만화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 2때까지 나는 거의 매달 빼놓지 않고 <소년중앙>을
구독 했었는데 6학년때 <소년중앙>에 <노랑나비같이>가 연재됐었다.

처음에 볼적에는 도무지 정감이 가질 않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던 순정체(?)의 그림과 그 많은 대사들. 대사가 넘치다 못해 배경화면에까지
박혀 있었지. 나는 지금도 남자들이 순정만화를 안보는 이유중의 하나가 많은 대사
때문이라고 믿어 마지 않는 편인데 아무리 부인을 해도 내가 바로 그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틀림 없는 이유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긴 그것이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외전격이라는 걸 몰랐던 나로서는 당연히 등장해야할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
당혹스럽기도 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표독이가 누군지 내가 알게 뭐냔 말이다.-_-;;;

암튼 <노랑나비같이>를 몇 달을 흘려보내고서 그래도 돈주고 산건데 아깝지 않은가
해서 중간치를 하나 읽었다. 왠지 거부감 들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독을 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그리도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2층 다락방으로(지나간 잡지나
헌책들은 모두 거기다 모아두고 있다가 어느정도 모이면 아빠가 소쿠리 채로 들어
할머니 집에 옮겨놓곤 했다. 그런 식으로 사촌들과 책을 교환해봤다.)
올라가 지나간 잡지들을 뒤져서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다. 대사 하나하나가 감칠맛
나는 것이 처음엔 이상했던 뒷배경의 글씨들마저도 어찌나 정겹던지...

그 이름도 찬란한 '표독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오는 말이 똑똑하지는 못한 녀석.
머릿 속으로는 온갖 철학과 고뇌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작
제이름 하나 발음하지 못해 '포동이'라고 했었지. 이 영악한 꼬마가 어찌나 귀엽던지...^^

마지막회에 현우네 식구가 모두 등장했는데 그 왁자지껄한 폼이 뭔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했지만 본편이 있다는걸 알리없는 나로서는 한번 스쳐 지나가기엔 아까운
사람들이다 하는 생각만 했었더랬지. 그때 표독이가 지 아빠를 보고도 뒷배경으로
'아아, 아버지 나의 아버지 노랑나비 첫회에 나왔다가 마지막회에나 다시 나오는
나의 아버지' 어쩌고 혼잣말만 하고 있다가 진우한테 한 대 딱 맞고서 진우가 표독이를
대롱대롱 들고 '요즘 애들은 맞아야 돼'라고 했던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바뀌지 않는 성격이여...^^

생각보다 연재가 일찍 끝나서 무척 아쉬웠었다. 그 뒤 김진이란 이름을 잊고 있다가
중2때 <신들의 황혼>을 읽으며 다시 접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틀렸고 비슷하긴 했어도
그림체도 많이 바뀌어 있었던 터라 어릴적의 그 김진과 연결을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후에 레모네이드 시리즈 중에서도 를 젤 먼저 봤는데
그걸 보고서야 예전과 지금을 연결시키고는 무척 놀랐었단 기억이 난다.
오, 세상에 <신들의 황혼>과 <노랑나비같이>라니... 그 극과 극의 차이라니...

한가지 비슷했단 것이 있다면 진한 남매애 같은 것인데 그건 일종의 김진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닌가 싶다. <1815...>나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김진님의 만화에
남매, 혹은 형제간의 애정은 항상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같은 남매애래도 그 성격이 틀리지 않은가.
한쪽은 지구를 파멸시킬 듯하더니 한쪽은 낄낄 거리며 웃게 만들고...
도대체 어느게 진짜야? 싶어서 혼자서 무진장 고민했었다.^^

어린 시절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봤던 순정만화들을 제외하고는(맨발의 신부 셀레나,
찔레꽃 요정 비올레타 등등이 있었지요. 아, 가끔씩 캉캉 로보트 가족 같은 것도 봤었군...-_-;;;)
철 들어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봤던 최초의 순정만화였다.
그리고 그후 순정만화에 맛들여 이미 점점 볼것이 없어져 가던 <소년중앙>을 버렸고
그후로 뻔질나게도 만화방엘 들락거리면서 만화 인생을 꾸려나갔다.
참 행운이 아닐수 없다. 첫방에 운 좋게도 김진님의 작품을 보게되어 지금까지도
절절하게 그분을 존경하며 살수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10/7/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피에스, 노랑나비같이 사진을 구할수가 없어서 고른다는 것이 토진이 가족이 됐군.
불의 강도 그렇고 옛날거라 그런가 사진구하기가 만만치 않네.
그래도 차라리 레모네이드나 모카커피를 스캔해서 쓸걸 좀 어울리지 않는건 사실이다.
그래도 귀찮다. 우선은 그냥 둬야지. 나중에 바꿀수 있으면 바꾸고...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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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처음 본건 중2 봄이었다.
만화방에서 읽을게 너무 없길래 고르고 고르다 어쩔수 없이 골라들게 되었다.
별로 마음이 가지도 않았던게 당시 만화방에 있던건 두꺼운 책 한권에 세권씩이
묶여져서 총 세권으로 나왔던 촌스런 꽃분홍색 표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해적판이다 보니 종이질은 물론이고 인쇄상태도 매우 안좋아서 전체적으로
그림도 많이 뭉개져 있었고 조악했다. 그러니 정이 갈 리가 만무였다.

그래도 어쩔수 없지 않은가. 볼것이 없으니. 그 당시만 해도 만화방에 다니던
초창기라 집에 만화책을 함부로 빌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을
만화방에 앉아서 봤는데 그것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막 만화방에 다니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전까지의 한유랑이니 전영희니 이수미니 하는 류의
만화나 이상무, 이현세류의 황당만화가 아닌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내가 거의 처음으로 본 순정만화다운 순정만화였다. 낡은 만화방 소파에
앉아서 아무 기대 없이 펴들었던 그 책이 나의 사춘기 시절을 뒤흔들어
놓았던 <베르사이유의 장미>였다.

그후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소장하고 싶다는 열띤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직후 서점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흰색 표지의 <베르사이유의 장미>
아홉권과 외전 두권까지 총 열한권을 엄마를 졸라서 구입했다.
그때 한권에 2천원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열한권이니까 2만 2천원.
그 당시로 볼 때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까운 줄 몰랐다.
지금은 내가 벌어도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씩 구입 못하니 돈 아까운 줄 모르던
그때가 더 좋았다. 하긴 그때 <드래곤볼>도 27권인가까지 구입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리엄마도 참 불쌍했었다.^^

그전에 이미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을 읽어서 그 여자에 대한
대략의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었다. 또한 즐겨보던 세계사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심리적으로 또한 무조건
악역으로 판단하던 전작들과 달리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오락적인 면에 더
치중을 했으므로 별 부담없이 볼 수 있었다. 그당시 순수한 혁명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 반대 세력에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좀더 유보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시선에서 서술된 것에 대해서도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가 원탑 주인공이었더라면 내가 과연 그것에 열광할수 있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는 없어도 오스칼은 있어야 했다. 그 증거가 오스칼이 이미 죽은 9권에
대해서는 시들한 마음에 별로 손대고 싶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이 오스칼이라는 인물이
그당시 내게 미친 영항은 대단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일부러 남자같이 걷고
목소리도 굵게 내고 했었다. 같은 반 애들한테 목소리 흉내내며 남자같애?
하고 물어보고 이상하다면 낙심하고 비슷하다면 좋아하고...

그 열광은 꽤나 오래갔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젤 마지막장에는 오스칼,
마리 앙투아네트, 페르젠의 생년월일이 나온다. 오스칼의 생일이 12월 3일인가 그랬었다.
그래서 어쩌면 실존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나는 온갖 서점들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뒤지며 오스칼이란 인물을 찾아내려 애쓰곤 했다. 끝의 생년월일이 설정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그녀의 존재를 믿고 싶어했다.
하다못해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던 들라크루아인가 하는 화가의 가슴을 다 드러낸
자유의 여신 그림도 오스칼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찌나 좋아해서 책들을 뒤졌던지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프랑스 혁명의 연표와
사건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 정부가 언제 들어섰었는지도
헷갈리는데 그때는 온갖 기억력을 거기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후에 <베르사이유의 장미>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올훼스의 창>을 읽고 역시
유리우스에 미쳐 지내고 기껏해야 1,2년이 지나지 않아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평이한 구조들을 시시하게 생각하게 되고 난 후에도 오스칼에 대한 그 마음만은
꽤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친구, 혹은 연인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파름문고인가 하는데서 마리 스테판드바이크 원작이라 해서 조그만 책이 나왔었지.
물론 그것도 읽었다. 내용이 많이 틀렸지만 원작과의 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원작자의 프로필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게 사기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니, 파름문고에서 나오던 시리즈들을 꽤나 재미있게 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주 그럴듯하게 조작된 사기였다니... 진실을 알고서 허탈해 했다.

조금만 주의깊게 봤더라면 <남녀공학>에 나오던 뉴욕주립 중학교의 수업방식이나
풍경이 지나치게 동양적이라는 것을 알았을텐데. 도대체가 미국의 중학교에서 누가
중간고사라고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를 하느냔 말이다. 아예 final 빼놓고는 그렇게
전체적으로 보는 시험 자체가 없는 것을. 그래도 그때는 그게 진짜인줄 알았다.

이래저래 일본의 옛 작품에 대해서는 엉뚱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이 꽤 많게 되었다.
결말까지 여기저기 제각작이니 어느게 진실이고 어느게 거짓인지도 판단이 안선다.
나만해도 불과 얼마전까지도 파름문고의 비밀(?)에 대해서 새까맣게 몰랐으니까.
그게 파름문고인지도 몰랐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봤는데 나중에 어디엔가에서
그 사태에 대해 읽다보니 그게 그거였다. 참, 이래서 세상은 재미있다.
그럴듯하다고 해서 다 진실은 아니라는 진리를 이토록 온몸으로 체험하게 해주다니 말이다.


이 글은 8/15/2004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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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님의 작품을 대체적으로 다 좋아하는 해일리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불의 강>이다.
중2땐가 지나간 르네상스를 보다가 발견하게 된 이 작품으로 인해 비로소
김진님 추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무엇보다 분위기 자체가 그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는 많이 틀렸던 걸로 기억한다.

김진님의 많은 작품들이 단행본으로 재간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아직
재간되지 않고있는 작품이어서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의 강>을 보던때의 이미지나 음울하고 뭔가 답답했던 느낌만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요시로우.
알고 봤더니 아버지까지 한국사람이었던 그. 첨엔 아마도 생긴게 주인공틱해서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내게 요시로우의 이미지 컷은 현재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병석에 누워있던 그에게 전화를 걸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뭐라 그랬더라. 대사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부르던 요시로우... 그때 참 가슴이 아팠었다.

어머니가 프랑인이던가 하던 미즈하라. 긴머리 휘날리며 노래 부르던 유쾌했던 소년.
그러나 그 헤져버린 속이 짐작이 가 더 애처롭던 그아이... 걔가 뭘 어떻게 했던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이미지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어지던 세상 다 산 듯했던 표정...

여주인공 이름이 뭐더라? 유경이? 유나? 유미? 왜 기억이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일본인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일본에 갔던 그녀... 당시엔 일본을 배경으로 했던
만화들이 흔하지 않았던 터라 아마도 더 자극적으로 맘에 와 닿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첫회엔가 일본으로 출발할 때 얘 진짜 일본가? 가다가 말던거 아니었어? 그랬었으니까...^^

계속 심장을 뒤집어놨었던 내용전개에 비해 끝이 참 허술했었다.
허무한 정도가 아니라 흐지부지 결론이 나질 않았었으니까.
그래서 더 안타까웠었는데 어느 인터뷰에선가 김진님이 시민단체의 압력이던가
그래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래서 미흡한 마음에 재간이
나오지 않고 있는건가. 아마도 지금 나왔어도 간단히 읽어넘길수 있는 사건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시절엔 더 했을테지. 하지만 난 그때 그 내용들을
접하며 뭐랄까 살떨리는 충동을 느꼈다. 막 소리지르고 싶은데 걔네들이 대신
소리질러 주는 기분. 이유모를 흥분과 관조, 허무함...

암튼 빨리 재간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흐지부지한 기억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리뷰를 쓸수 있도록... 그리고 그때는 제대로 매듭이 지어져서 나왔으면...
벌써 10년 세월이 지났고 사회적 여건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하긴 김진님 매듭지어야 할 작품이 어디 한두개여야 말이지...


이 글은 8/09/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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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년을 이어져 내려온 전통의 명문 과자점 후쿠야당.
그 17대 당주의 세딸들인 히나, 아라레, 하나.
생긴 것조차도 전혀 제각각인 그녀들의 공통점.
지엄마 닮아서 하나같이 고집들은 지독하게 세다.-_-;;;

사실 선뜻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나중에 가면서는 콩깍지가 씌여 버렸지만
처음 대한 그림은 밸런스가 맞기 않아 어색했고(턱이 거의 없이 입술만 있는
얼굴형이라니...T-T) 뒷표지에 잠깐 맛보여진 줄거리 역시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높이기는커녕 이거 재미 없을거야 하고 단정지어 버리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므로 <후쿠야당 딸들>을 보게된건 순전히 볼게 없어서였다고 말하는게 맞을 것이다.--

푸하하하~~~ 그런 오산이 있었다니. 이런 오산은 천번을 해도 기분 좋을 것이었다.
집에서 후쿠야당을 읽으면서 뜻밖의 행운에 몸을 떨어야 했으니까.
동생이랑 둘이서 이렇게 재밌을줄 몰랐어를 연발했으니...

장녀인 히나. 결혼 빼고는 한번도 엄마의 명을 어겨본 적이 없었던 모범생.
그러나 사실은 가장 고집센 맏딸. 그동안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스스로 원하는 것이 생기자 망설임없이 결혼을 택한 여자.
첨에는 전형적이고 매력적이지 못한 인물이 아닐까 했는데 웬걸,
후쿠야당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히나가 되어 버렸다.
유치 야요미님. 장녀이시옵니까? 어찌 그리도 장녀의 생리를 잘 아시옵니까?
읽으면서 내내 맞아, 이랬어를 연발했답니다. 저 장녀이옵니다.-_-

가장 주인공적인 성격을 지닌 아라레. 그러기에 내겐 별로 사랑받지 못했다.
어쨌건 그 저돌성만은 높이 사주지. 막내 하나양. 어찌 그리 일편단심인가.
첫사랑을 마지막까지 이어 가다니. 가히 기적일세. 난 미후가 더 좋더만...
히노야마상, 바람은 싫어요. 그것땜에 점수 많이 깎였다고 불평하지 말아요.
뭐 그래도 그 심술궂음은 높이 사주죠. 히나와의 한판 승부는 언제나 유쾌했답니다.
첫만남부터가 그랬다니 말이야.^^ 켄지... 에~~~ 평범해. 그래도 뚝심은 있으니 뭐.

자매들간의 상관관계 같은 것은 사실 공감 가는 것이 있었다.
사실 난 어릴 때 그런것들을 일일이 계산할 정도로 영악하지는 못했었다.
따라서 부모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당연한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지만(그냥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가장 일차적으로 형성되는 그 관계에서
작은 사회를 배워 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순히 싫어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베풀고 받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파생되며 배워나가는 인간관계.
외동이 이기적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그 일차적인 관계들을
배워 나가지 못했으니까. 지지리 싸우고 툴툴 거리면서도 내가 나와 평생을
함께 할거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현재는 내 주변에 내 동생들밖에 없다.
그들도 그럴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우리중에 누구도 서로를 다른 개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사람이 뭔일 당하면 온집안이 들고 일어나지.
예전에 누가 그랬었다. 이집안은 건드리면 안 되겠다고.
하나 건드리니 다섯(엄마, 아빠까지...^^)이 딸려 온다나?

암튼 그에 못지 않은 후쿠요시 가의 세 따님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생생함이 매력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에서 지들 어릴적 생각
못하고 자식들을 다루던 그 모습에서 역사는 이어진다(?)라는 것을 느꼈다고나...^^

일본의 장인정신. 그것은 무서운 것이다. 전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집요한 이어짐에 대한 집착이라니. 그 당사자의 행동의 자유는 물론이고 결국은
정신까지도 구속하는 전통에 대한 집착. 지금의 우리에겐 찾아볼수 없는 것이겠지.
그래서 더욱 생경하면서 일말은 부러웠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무서웠다.
내가 그런 처지라면 난 얌전히 가업을 이을수 있을까.
아니,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되었으니 당연한 것이 될까.
암튼 그 끈질김이 그들 역사의 한부분을 훌륭히 설명해주는 구실이 되는 것 같다.

일본의 고도인 교토. 우리에겐 경주와 같은 곳일 것이다. 그나마 경주가 오래전의
수도이며 또한 많은 수도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향수나 집착이 약하다면 교토는
메이지 유신 전까지 오랜 세월을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 전부터
중요한 곳이었다 해도 불과 100여년 수도역사를 자랑하는 도쿄보다 쿄토인들이
더 배타적이고 그만큼 자부심이 강할 거라는 것은 짐작은 간다. 교토에 가게 될 일이
생기게 되면 복잡하게 머리 굴리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혼네'일까 '다테마에' 일까를 헷갈려 하느라 말이다.


이 글은 8/15/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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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told me를 처음 대했을 때 느낀 감정은 '박제된 안틱'같다는 거였다.
작가 아버지와 조숙한 딸 치세의 유난한 사랑과 그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는
뭐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본만화의 한 전형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행복이 가득한 집>, <앙상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잔잔한 수채화같이 묘사한 전원느낌의 이야기.
아름답지만 가슴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이 가득한 집>과 <앙상블>은 아직 나온데까지 다 읽지도
못했다. 예전의 경험으로 이런종류의 만화는 한꺼번에 쌓아놓고 보기보다는
한번에 서너권 정도씩 읽는 것이 내게는 적당하다는 것을 알았던 탓에 나는
그 만화들을 만화방에서 볼것이 없을 때 몇권씩 집어들고 온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기여한 바가 크다.
처음에 그 만화를 5번까지 읽었는데 당시 너무 재밌게 읽었었다.
그후로 한동안 볼 사정이 못되다가 완결 뒤 6번부터 끝까지를 한꺼번에
빌려와서 읽었는데 왜 그렇게 길던지...-_-;;;
내 마음엔 동화가 살 구석이 없나보다. 아, 물론 재미가 없다는게 아니다.
다만 그런 스토리들에 감동을 받기엔 이미 내 심장이 굳어 버렸다는 거다.

역시 처음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그런 스토리일 것을
짐작해서 처음에 세권, 그다음 세권, 그다음 두권, 그런 식으로 읽었다.
그렇게 8번까지 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내 예상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 세권을 읽을때는 약간의 짜증까지 났었다.
부녀의 유난한 사랑은 거의 배타적 수준이어서 그들 주위의 그들의 사랑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하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나 몇권인지는 모르겠는데
치세가 학교에서 치세야, 하고 불리면 대답을 하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그 이유가 다름아닌 치세야, 하고 부를수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그만 한숨이 나왔다. 사람의 사는 방식을 다른 사람이
뭐라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명백한 오버다.
치세야, 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호칭이 아닌 이상 그렇게 불릴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거다. 그럼 그때마다 대답을 안할건가?
이유를 물어도 말해주지 않은채? 그 모든 사람들이 치세 학교의 교장선생님처럼
어린아이의 동화를 이해해 주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런다면
그런 태도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내가 지나친 오버일 수도 있겠다. 아니, 사실 좀 오버하는 것 같다.
어린이의 순수를 이렇게까지 매도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눈에 띄는 것들을 그냥 넘기기에 나는 무척이나 쪼잔한 것을...-_-;;;
치세의 자신의 동화를 지키기 위한 그런 행동은 다른이들을 상처입힐 수 있다.
치세의 그런 태도에 다른이들이 상처 입는다면 그건 그들이 못나고 이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세가 다른이들을 배려하지 못한 탓이다.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채 알아서 알아먹길 원하는건 지나친 오만이다.
자신의 아빠가 다른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여자가 생기는 것은
더더욱 용납 못하고(사실 여자 부분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볼 때에는...
훨훨 날아가는 딸과 쓸쓸해할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_-)
그런 모든 것들이 한량없는 사랑에 의해 용납되고... 지나치게 조숙한 그런 아이,
가끔씩 떼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어른들에게 훈계도 하고 영리하고 어질르지도 않고 팔딱거리지도 않고...
지나치게 보는 눈이 높아 부담스러운 아이. 아무리 만화가 모든 현실을
반영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지만 이건 지나치게 어른들의 틀에 짜맞춘
이상적인 아이상이 아닌가 말이다.

흐음... 이렇게까지 쓰고보니 내가 Papa told me를 무척 싫어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이 만화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축에 속한다.
잘 꾸며진 서양식 고급 안틱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만화는 사실 그다지 상류층의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 세련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가졌다.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아빠와 지나치게 조숙한 딸이 등장함에도 허둥대지 않고
질퍽대지 않고 청승맞지 않고 깔끔하고 우아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세련된 양장본을 읽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다른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똑같은 가족애라도 <아기와 나>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아,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유리코이다.
치세의 고모이며 유능한 노처녀 커리어 우먼. 때로 자신의 나이를 버거워 하며,
사랑을 꿈꾸며 때때로 현실의 벽에 부딪치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자신이 그다지
싫지 않다고 나직하게 말하는 그녀.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지만 천천히 조용하게
자신을 길을 걷는 그녀는 내가 Papa told me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일하다 사랑하다 결혼하는 여자가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고
이 만화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처럼 마키바 신키치를 짝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어서이기도 하다. 하긴 자신의 친오빠를 짝사랑하는 분위기의 만화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가 사랑하는걸 반대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분위기라면
사랑하더라도 사랑에 눈멀어 다른것들이 다 의미 없어지는 캐릭터는 아닐거 같아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결국 Papa told me에서 내가 발견한 진주는 치세도
마키바 신키치도 아닌 유리코가 되고 말았다. 뭐, 그것이 별로 싫지는 않다.


이 글은 11/16/2002 에 작성한 글입니다.

2004년의 시점으로 덧붙이는 사족...
이 책을 안본지 꽤 오래 되었다. 뭐 그래도 처음의 느낌과 그다지 틀려지지는 않았는데
그후로 열권정도를 더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확실히 부녀 이야기보다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맛이 있었다.

현재는 대여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잘'이라는 말은 가끔은 이용한다는
뜻도 되는데 사실 나는 내가 읽는 모든 만화책을 전부 사서 읽을 만큼의
여유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금의 만화현실을 생각한다면
이런 얘기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움은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무척 길어질 얘기이므로 나중에 따로 글을 작성하는 편이 낫겠다.
어쨌건 근본적으로 나는 대여점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내가 직접 구입하는 책과 만화는 보통수준보다는 넘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경우 빌려보는 것과 사서보는 것의 구분이 매우 뚜렸한데
돈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맘놓고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봐야겠는 경우는 도서관이나
대여점을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정말로 최악의 작품일 경우라도 욕을 하기 위해서라도 봐야하는 경우가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는 것만큼 무식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일반인들이 그런 구분을 잘 해준다면, 그래서 사야할 책은 살 만큼의 정신적
성숙도가 이루어진다면 지금같은 현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같지는 않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열권의 책을 사는 사람보다 백권의 책을 사면서도 가끔씩이라도
대여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비난받을 수 있는 현실이 탄생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권도 안 사보면서 대여점 책 마저도 자기돈 주고 보기는 아깝다고
친구가 빌려온거 뺏어읽는 사람들은 확실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꼭 옷 살돈은 있더란 말이지...


     -이 글은 3/28/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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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리는 공포물을 좋아한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정도를 벗어나 열광한다는 수준에 가깝다.
그러고 그것은 세 살 어린 여동생도 마찬가지여서 둘이서 비디오 가게들을
헤집으며 토요 미스터리나 일본 공포물들을 열심히도 빌려다 보곤 했다.
더위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해일리가 유일하게 여름을 버텨내는 낙이 있다면
그건 무서운 걸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해 뜨거운 것도 싫은데
오싹한 공포마저 없다면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아마 나는
녹아 버렸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영상매체라면 카메라로 분위기를 조성해서 오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활자매체에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상상이라는 것이 동원된다 하더라도 책을 보며 웃거나 울었던 적은
있어도 무서워해본 적은 별로 없다. <퇴마록>에 열광하긴 했어도 그건
그 내용이 맘에 들어서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책을 보면서 무서워했던 기억은 <어느날 갑자기> 정도가 고작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누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온몸에 떨려오던 기억이 난다.

만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림이 있다고는 해도 만화를 보며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토준지의 공포 시리즈 역시 내겐 혐오감만 조성했을뿐
공포심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자고로 난 피보는 류의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은근한 맛 없이 툭툭 사건 벌어지는 내용은 시시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러므로 별다른 이유없이 찢고 부수는 류의 작품들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트 메어나 프랑켄슈타인 류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나는 소복 체질이다.
현대물로 오며 소복은 많이 사라졌지만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두눈 번뜩이며
노려보는 것만한 공포가 없는 것이다. 그런건 [이야기속으로]가 짱이었다.
한때 꽤나 좋아 했었는데... 아, 만화 중에는 <드래곤 헤드>정도가 공포심을
자극했었던 것 같다. 하긴 그건 공포라기보다는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에 가깝긴 했지만...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이제까지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한 이유가 바로 내가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강경옥님의 <두 사람이다>가 미스터리 심리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이다>역시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류의 감각에 상당히 무뎌져 버렸다.
그래서 첨엔 무서웠던 사람 죽이는 꿈도 이젠 아무렇지 않고 웬만한 크기의
바퀴벌레 따위는 눈도 깜짝 안하고 잡아 버린다. 하긴 그러고서 얘네들도
아픔을 느낄까 하는 사소한 죄책감 따위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하지만 미스터리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무서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목적만으로 미스터리 혹은
공포물이라는 장르가 존재해 왔다면 이토록 오래도록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스터리나 공포물은 심리물이다.
주로 사람의 숨겨진 본심을 건드려 살인도 시키고 음모를 꾸민다.
우리가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밑바닥에 감추어둔 심리를 교묘하게 끄집어낸다.
직접 할 수는 없으니 간접경험을 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서워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 있다면 무섭지는 않았어도 보고 난후에 다시
한번쯤 생각해볼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수 있는 작품도 필요한 것이다.
<레이블 호수>가 스릴러라고 해서 그게 무서운가.
그것은 오히려 남겨진 자와 먼저 간 자의 인간간계를 정리해 볼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지는 않았었나.

한 집안이 있다. 그 집안은 명문대가였으나 한 대에 한사람씩 타의에 의해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가까운 관계에 있는 두 사람에 의해서... 그
리고 아마도 이번대의 타겟은 지나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를 죽일 두 사람은 누구인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
법사 할아버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 죽을 뻔하기도 하고
친구나 사촌까지도 자신을 죽이려 하다니...

그런 상황에서 지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는 흔히 여주인공들이
범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소리만 지르며 주위의 남자들에게 매달리는 대신
실컷 무서워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일어서서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여럿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차도에서 '그중에 있어' 하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냉정을 찾아가는 표정은 압권이었다.
그야말로 만화가 아니면 이루어낼수 없는 연출이었겠지.

이무기의 저주라는 설정역시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생경할수
있었던 소재였다. 전설의 고향에나 단골로 나올법한 소재지만 너무 익숙하기에
오히려 정면으로 다루어진 적은 없는 소재였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이라면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보다도 더 실감나지 않을까.

유진에게 나타나던 유령. 그녀가 측은했다. 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더라는
옛말을 떠오르게 하는 유령이었다. 아, 범인은 나역시 맞추지 못했다.
아니 맞춰 보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의 버릇인데
나는 추리나 미스터리를 보면서 범인을 맞춰 보려는 생각을 아예 안하고 산다.
<에지>나 <김전일>, <코난>같은 것을 보면서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더군.
뭐 보다보면 나오는 거고 어차피 '범인은 이중에 있다'는 패턴일 테니...
그래서 <두 사람이다>를 보면서도 누가 범인일지가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좀 뜻밖이기는 했다. 한사람이 아닌줄은 알았는데 또 한사람이 맞을줄은 몰랐다.

뒤에 실린 외전. 특히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아, 이름을 그런 식으로 연관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명현이라는 인물 자체가 외전에서 더 생명력이 살아 있었다.
하긴 지가 주인공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런 내력을 가진 집안의 살인자 엄마의 아들로서의 성격은 그런 캐릭터에서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반드시 우울할 필요는 없겠지만 본편에서의 명현은 어쩐지
좀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마도 경옥님이었기에 가능했던 작품이 아닐까. 원래 경옥님은 물흐르듯 관조적이면서도
고요한 표정으로 콕콕 끄집어내는 심리묘사가 주특기이니 아마도 그런 그분의 성향을
가장 잘 표현할수 있었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셨는지 불안한
구석이 없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중반이후로 다 끝나면 볼려고 손 놓고 있던(어쩌다가
완결난 지금까지도 못보긴 했지만...-_-, 2004년 현재는 읽었습니다.^^)
<노말시티>에서 느껴지던 왠지모를 불안감이 없다. 솔직히 <별빛속에>나<현재진행형>,
<라비헴 폴리스>만큼 열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매우 안심이 된다.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는게 아닐까 불안한 몇몇 다른 중견
작가님들에게서 느끼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고맙다.


이 글은 8/16/2001 에 작성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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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는 하디와 함께 한 집앞에 서있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으로 보이는
그 집에서 가장이 출근을 하고 그의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그를 배웅한다.
그와 레이아가 스쳐 지난다. 그가 지갑을 떨어뜨렸던가.
레이아가 그에게 지갑을 주워준다. 그안에 깊숙이 들어있던 갓난아기의 사진을
레이아가 봤던가 어떤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그들이 스쳐 지나가며
중년신사는 중얼거린다. '저소녀 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
갓난아이의 사진으로밖에 그들은 만난적이 없었으니까.
괜히 강한 혈육의 끌림 어쩌고 하는 설정을 넣었더라면 그보다 더
부자연스러울 수는 없었겠지. 어쨌건 레이아는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었다.
할렘 출신이었지만 부자인 양아버지를 만나 유년 시절을 지낼수 있었고
다행히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친자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친아들인
라몬보다도 더 아낀 듯이 보였지만, 또한 어머니의 사망이후 레이아는
누구도 뭐라는 사람 없는데도 스스로 그집을 나왔지만 그 아버지의 죽음앞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눈물을 흘릴수 있었을 것이다. 의붓동생인
라몬의 침입역시 반갑게 받아들일수 있었겠지. 라몬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싫어한 의붓누이였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친척들보다도
그녀가 더 순수하게 자신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세월을 같이 산다는건 그런 것이다. 비록 어쩔수 없는 끌림에 아버지를
찾아나서고 돌아서지만 그녀는 같은 세월을 살았던 유년시절의 가족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누가 생기라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그런 애정이 말이다.

흐음... <이카드입니까>의 주제가 이런 것은 아니었단 생각이 이만큼이나
써놓고 나서 드는건 왜일까...-_-;;; 어쨌건 나는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니까... 변명이라도 늘어놓자...--

할렘 출신이라는 것이 계속 콤플렉스가 되어 레이아를 짓눌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곱게만 자라지 않았던 이력이 납치 당해서도
배고픔을 느낄수 있을 정도의 신경을 길러주었고 창문 밖으로 살짝 보이는
풍경이 어디를 뜻하는 것인지도 그녀 콤플렉스의 근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납치범중의 한명이었던 그...(이름 잊어먹었다...-_-)의
도움을 얻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결국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던가...

능글능글 팔자좋은 놈인줄만 알았던 하디 노크먼. 사실 그레이 허슨보다도
이녀석이 내겐 더 어필했는데 어린시절 영재의 말로(?)란 그런 것이었던가...-_-;;;
그에게도 고난의 세월이 있었겠지. 스스로 실망하고 절망하다가 가슴이
짓눌릴 정도로 압박감에 시달리고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스스로
얻어낸 삶의 방식일 것이다. 조금 더 덜 괴롭기 위한...

레이아가 그레이를 걸고 한 내기가 탄로 나고 홈커밍에서 돌아오던 그 썰렁했던 차안...
그리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튀어나오던 그 노래. 빌리 조엘의 honesty.
얼굴 빨개지던 레이아와 쿡쿡거리던 그레이.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설정이 아닐까.
정말 백마디 말보다도 더 압도적으로 다가오던 상황설정이었다.
그림을 최고도로 이용해 압축적이고 의미깊은 장면을 연출해내는 강경옥식
그림체의 저력은 데뷔작에서조차도 그 빛을 발휘했다. 그후로 느낌만 가지고 있던
honesty를 처음 듣게 된건 몇 년뒤였는데 처음엔 평범하게 들려오던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나는 honesty를 honesty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카드입니까>의 honesty이기에 좋아하는 것인가 보다.

데뷔작임에도 흔히 신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설픔과 상투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완전한 틀을 갖추기 전이지만 그래도 강경옥식 심리묘사와 상황설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렇게 기초를 다져나가며 강경옥님은 그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켜 나갔나보다. 역시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자고로 맞나보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 않은가 말이다.^^


이 글은 9/26/01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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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얻어가지게 된 드라마의 엑스트라 출연에서 숨은 재능을 알아본 감독에
의해 스타탄생... 만화 속에서라면 충분히 있을법한 소재다.
그런데 세영에겐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평범하게
다시 일상속으로의 컴백. 어쩌면 혜미가 자신에게 이일을 소개한 것은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채...

열일곱살. 평범한 고교 2년생. 가끔씩 좋은 표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체로
평범한 일상을 가진 평범한 아이. 세영은 그런 아이다. 그러다 소꿉친구에의
짝사랑을 깨닫고 그의 예쁜 여자친구를 순수하게 대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둔한 소꿉친구에게 짜증내기도 하고 천만뜻밖에 자신을
좋아하고 있던 선배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그러다 물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 스토리가 끝나고도 여전히 세영에겐
여러가지 일들이 생겨나겠지만 어쨌건 세영에게 전처럼 현우와 혜미 때문에
골머리 썩어야할 일들은 일어나지 않겠지.

아마도 처음엔 그런 스토리에 적응하지 못했나보다. <17세의 나레이션>을 처음 대하던
중학교 2학년때 강경옥님의 매력은 당시 하이센스에 같이 연재되던 <블랙타임 0시>나
<조슈아>등의 요란 벅적지근함에 밀려 내눈에 띄지 못했다. 만화방에 쌓여있던 지나간
하이센스와 르네상스중 순전히 권수가 더 적었다는 이유로 친구가 빌려온 서너권의
하이센스의 첫호에 실려있던 <17세의 나레이션>은 그러므로 그당시 내게 읽히지도
못하고 지나갈 뻔했다. 그당시 나는 왠지 로보트같은 느낌을 주던 딱딱해 보이는
그 그림체에 내가 적응할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순전히 빌려온
돈이(내돈은 아니었지만-_-)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보기 시작한 <17세의 나레이션>...
글쎄 그때 느낌이 어땠더라? 아, 시공을 초월하지 않아도, 혁명속에 피어나는 사랑이
아니어도 감동적일 수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앞에 충격을 받았던가...
그후로 <17세의 나레이션>을 보기 위해서 하이센스를 빌려보게 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잔잔한 충격이었다.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그들의 행동과 감정.
차라리 못된 라이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뜻과는 다르게 착하기까지 한 혜미를
'어쩌면 이 아이를 좋아할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어느 한순간 '아아, 나는
혜미는 좋아지지 못할거야...' 하며 독백하던 세영의 감정. 사실 알고보니
현우도 세영을 좋아하고 있었다라는 정석은 아니었지만 세영과 시간의 흐름이
어긋나게 한때 세영을 좋아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같은 심정으로 연호선배를 대하던 현우. 그들은 어쩌면 내가 좋아한
최초의 주인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을 싫어했던 나의 버릇은
아마도 그들의 지나친 영웅적인 활약상에서 나온 것이었나보다. 평범한 그들을
보게 된순간 입가에 배시시 미소지으며 그들을 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현정이같은 친구를 가질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생 최대의 행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똑똑한 반장. 침착하고 차분한 아이. 냉정한 사고력을 가지고 연호 최대의 맞수로 활약했던
최현정. 연호선배를 좋아했지만 세영을 더 좋아하는 자신을 알았고 세영에게 언제나 최대의
조언자가 되어 주었던 그아이. 이런 친구가 갖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내 친구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소망중 어느것도 이루지 못한
듯 싶다. 일견 쉬워 보이던 그 소망은 세상을 살면서 보니 가장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다.

처음 <17세의 나레이션>을 읽었을 때 나는 그들보다 세 살이 어렸다.
그때는 아직 세상이 어려운줄 몰랐고 그들의 나이대가 되면 나역시 그들처럼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가지며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나이대가 되었을 때 나는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그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조차 잊어버렸다.

내 열일곱은 어땠었나. 그리고 나는 지금 그들보다 몇살이나 더 먹어버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나이를 먹은만큼 내 정신은 성장하지 못했나보다.
정신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이미 그처럼 순수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향수를 지닌채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을
그리워만 하며 살고 있다.

당시 연재되던 하이센스에서 <17세의 나레이션>은 이상하게 퇴장당했다.
혜미의 생일에 화장실에서 옷을 말리며 끝났는데 그아래 강경옥 선생님이 지병으로
더 이상 연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때의 퇴장은 뜻밖이었다며 그때 억지로 갖다붙힌 변명 때문에 나중에도 몸은
괜찮으시냐는 인사를 들어야 했다고 강경옥님이 말씀하신 기사를 읽었다.
하이센스는 김영숙 군단이 만든 잡지, 그 안에서 김영숙 군단이 아니던 김지윤님의
<사이드 스토리>, 이미라님의 <호두나무가 있는 동화>(나중에 <인어공주를 위하여>로
재판되어 나옴)가 모두 그런식으로 어정쩡하게 물러났다. 그런 파행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간되어 나오기도 했었으니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그 생명력만은 칭찬해줘야 하는 것일까.-_-;;;


이글은 9/26/01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