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럴줄은 몰랐는데, 나 이거 보구... 울었다.
그럴줄은 정말 몰랐다. 별다른 기대를 하고 본게 아니니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다케노우치 유타카랑, 소리마치 타카시에 나카무라 토오루까지
나온다기에 다운받아 놓고 몇 달을 묵히다가 오늘에서야 봤다. 한부씩이 기껏해야
한시간 정도, 총 두어시간 정도일 걸로 예상했다가 그 두배가 넘는 상영시간에 우선
놀랐고, 네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하다가 결국은 눈물 질질 흘리면서 정신을
놓고 봤다.
사실 이거 보는데 부담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허수아비였던
만주국에, 국제적인 정략결혼에... 도대체 이걸 어떻게 미화시킬 것인가 그걸 보면서 나는
또 얼마나 감정이 뒤틀려야 하나,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글들을 보니 제국주의를 미화시키지는 않았다길래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메이저 방송국이 초호화 캐스트를 긁어모은 야심작답게 가끔씩
허술했지만 대체로 장대했으며 시각역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보여 주었다.
뭐 나중에 다시 쓰겠지만 결국 문제는 제국주의 시각이 아니라 '당신들의 역사' 였다고
생각한다. 중국 인민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당신들만의 왕조'.
그러므로 그 아집과 무지가 당신들의 불행의 원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중국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는 우리의 영친왕 같은 인물이 아니던가. 황제의 동생이었고, 일본에 인질같은 유학을
갔으며, 육군학교를 다녔고, 일본황족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두었다. 인생역정이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가. 실제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간에 동질감을 느끼며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이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현명한 일본인 부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였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했을까.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략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혼이었다면 가장 잘 맞는 상대와
친우처럼... 그것이 그의 고달픈 운명에 그나마 하나의 선물이었나 보다.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실존인물이었으므로 더욱...
자, 그런데 일단 감상은 이 정도로 접고 내가 멀더는 아니지만 진실을 파헤쳐 보자.
그쪽에 대한 책들을 읽은지가 오래되었고 또 그다지 파고든건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력과
알고 있는 사실에 한계가 있겠지만 그동안 여기저기서 읽고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만주국' 은 중국 인민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 의미는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다.
만주국은 일본인이 세운 국가다. 만주에 대한 일본의 통치력을 키우기 위해 이미 망해
넘어진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를 데려다 세운(일본인이 왕이 되면 중국인들을
장악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순전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나라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부의가 일본을 싫어하고 히로를 박대했던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일본에 항거한 적이 없었으며 하다못해 조선의 고종처럼 '찍'
해보지도 않았다.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그는 한마디로 만주를 팔아넘긴 셈이다.
그것도 이미 몰락한 왕조의 왕이었던 그가 말이다. 청나라 역시 일본에 의해 멸망한 것은
아니다. 부의는 신해혁명에 의해 하야당했다. 내가 알기로 신해혁명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일으킨 혁명이다. 일본이 일정한 어떤 역할은 했을지라도 엄연히
신해혁명은 중국인에 의해 선택된 혁명이었다. 이미 중국은 왕조를 원하지 않았으며 ,
그러므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부의의 운명은 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를 데려다 일본은 허울좋은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그럴 의지도 없었다. 만주국을 세울 때 도망칠 궁리도 못했을까.
그리하여 자신의 백성들의 항일운동에 구심점이 되어줄 생각. 결국은 실패했지만
고종이나 의친왕처럼 말이다. 그것이 자신의 백성의 손으로 하야된 왕조과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쫓겨난 왕조의 차이란 말인가.
후케츠는, 그러니까 부걸은 그런 허상과 같은 왕조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쓸모없는
고군분투를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노력, 일본인들도 콧방귀를 뀌는 그런 노력 말이다.
드라마에 묘사된 대로라면 그는 온화하고, 자애스럽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만주국의 아무것도 아닌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귀하게만 자랐고 또한 일본에 의해 허울좋게 고귀하게
받들어지는 형을 설득해 만주국을 닫아버리고 자국내의 항일세력과 결탁해 자신의 형을
항일의 상징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렇더라면 설사 자신의 백성이 원하지 않아 쫓겨났던
왕일지라도 그들은 존경받는 왕실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해방후 적어도 인민의 적으로
수용소에 갇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화혁명 기간에라도 살아남을수 있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일본군이 자신들을 핍박한다지만 그런 일본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살아남지도 못했다.
만주국은 오로지 일본에 의해서만 의미가 있고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천황의 항복선언을 들으며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두려워 했고 러시아의 수용소에서
중국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던 것이 아닌가.
일본이름인 후기와 후케츠로 불리며 일본을 미워한다지만 일본에 의지했고 중국을
위한다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허울좋은 만주국에만 매달려 있었으므로 그들은 몰락했다.
자신들의 갈길을 잃어버렸다. 자신들을 존경하는 백성이 없으므로 그들은 불쌍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왕조의 영화에 매달렸으므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내 나라의 왕조와 그 세월과 과정이 비슷하여 더욱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자신들의 나라라면서 자신들의 백성이라면서, 그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술 마시며 슬퍼만 하면 존경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이 그렇게도 자랑인가.
내가 그런 왕조의 후손이라면 부끄러워 안으로 숨어들거나 사죄하며 자숙하겠다.
아니면 조상의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평생 봉사하며 살겠다. 황실의 후손이라 잘난척하며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기 불쌍해서 하는 말이다.
중국쪽은 모르겠고 조선쪽 말이다.
흠, 일본이 보기에 어쩌면 조선은 만주국보다 더 위험했나 보다. 그러니 만주국 쪽은
일본인의 피가 섞인 왕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조선은
아예 대를 끊어 놓으려 한 것 아닌가.(이방자 여사가 왕세자비로 간택된 것은 그녀가
불임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는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쿠도 중좌같은 사람은 평생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야만 하며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 그가 결국 부의에게
충성하게 되는 것은 대의명분이라던가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심이라기 보다는
복종할 곳을 잃어버린 그가 결국 명령받을 곳을 찾아 헤맨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물론 미운정도 작용했을 것이고.
조선과 중국의 왕족에 대한 일본의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듯 싶다.
중국의 황제였던 부의는 자식이 없었고 그 동생인 후케츠(부걸)에겐 딸이 둘인데 하나는
죽고 하나는 일본에서 일본인 남편과 살아가니 말이다. 다른 황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공산 치하였으니 그리 별반 영화롭지는 못할 듯 싶고.
조선에 이르면 더욱 참담한 기분이 든다. 반쪽 조선인 왕세자는 제대로된 가정도 꾸리지
못한채 유랑하듯 떠돌이 삶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한국말도 잘 못한다고 한다.
또다른 왕실 가족이라는 비둘기집을 부른 아저씨는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은지 이해
안가는 행각을 벌이고 있고. 도대체가 황실이라는 말이 안나오는 것이 아무 힘도 없는
상태에서 제국선언만 하면 다냐는 거지. 나라를 멸문지화를 만들어 놓고 황족은 무슨.
그렇다고 왕실재산을 무작정 빼앗아 비참하게 살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친일파들도 떵떵거리고 잘 살잖아? 이승만이 왕실의 방계라서 직계였던
자들을 질투해서 벌인 일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리 허황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끝맺는 마당에 사족 몇 개...
1) 나카무라 토오루 아저씨가 연기했던 토오야마(맞나) 중좌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는 왜 애초에 중국땅을 떠돌아 다니고 있었을까. 뭐 볼일이 있다고.
설마 후케츠와의 약속 때문에? 에이, 그건 오버고 토오야마상의 뒷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누구 아시는 분... 나카무라 토오루 아저씨 오랜만에 봤더니 많이 늙으셨더만.
그래도 반갑더이다. 그런데 그런 단역으로 출연하신건 주가가 떨어져서 그런건 아니죠?
특별출연이라서 그런거죠? 난 아저씨 몸매선이 너무 좋아요.-_-;;;
2) 소리카치 타카시상은 아무래도 사쿠라이란 이름과 인연이 특별한가봐.
<비치보이스>에서도 사쿠라이 였잖아요? 아저씨 머리모양 너무 웃겼어요.
그래도 본판이 워낙 괜찮으니까 봐주긴 했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격렬한 전투에서
권총하나 들고서 돌격하는건 너무 어불성설 아닌가요? 실제로도 권총 하나 들고
덤빈건 아니죠? 음, 아저씨같이 좋은 사람도 독립군 꽤나 때려 잡았겠지.
그 이름도 찬란한 관동군이잖어.
3) 후케츠와 히로의 장녀인 에이세양. 왜 그렇게 죽어야 했지? 당신들의 사랑에 어떤
장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신쥬라니...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잖아.
주은래에게 편지까지 보낼정도로 현명하고 생각도 깊은 사람이. 그게 로망인 거야?
아무래도 왕실가족과 신쥬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듯. 덕혜옹주 딸도 그렇게 죽지 않았나?
4)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왕조의 세월>이란 드라마가 생각났다. 10여년전 쯤에
특집극 형식으로 방영된 드라마 였는데 이방자 여사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었다.
다른 배우들은 기억이 안나고 이방자 여사 역할을 이휘향이, 민갑완 여사 역할을
이덕희가 맡았었다. 당시 상당히 관심있게 봤었는데 보면서 내내 생각이 나더군.
내용은 잘 기억 안나고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아무래도 구하기 힘들겠지.
5) 이방자 여사가 쓴 회고록을 서치해 봤더니 절판이더군. 너무 무관심한거 아냐?
좀 복간해줘요. 반드시 살테니...-_-;;;
6) 음, 유전이 그런 뜻이었군. 난 몰랐지. 난 또 '기름'을 가리키는 유전인지 부모자식간의
유전인지 헷갈렸었지. 내가 한문엔 빵점이거던.-_-;;;
7) 히로역의 토키와 다카코. 이 여인네를 어디서 봤는지 통 기억이 안난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생각이 날듯말듯, 가물가물 하다.
얼굴선이 중국사람같이 생겨서 첨엔 중국사람인줄 알았다. 남편이랑 부인이
국적 바꿔서 출연하나 보다 했지. 장백지 닮은듯도 싶고. 혹시 진짜 장백지 아냐?
진짜루 어디서 보기는 봤는데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안난다구. 어디에 나오셨어요?
8) 다케노우치 유타가는 상당히 일본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청나라 옷
입혀 놓으니까 또 중국사람 같이도 보인다. 부의역할을 맡은 배우와 실제로
닮아 보이기도 하고. 안경이 비슷해서 그런가? 난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흑~~
-이 글은 7/17/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