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2008. 6. 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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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왕비, 마지막 황제...
음, 그럴줄은 몰랐는데, 나 이거 보구... 울었다.
그럴줄은 정말 몰랐다. 별다른 기대를 하고 본게 아니니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다케노우치 유타카랑, 소리마치 타카시에 나카무라 토오루까지
나온다기에 다운받아 놓고 몇 달을 묵히다가 오늘에서야 봤다. 한부씩이 기껏해야
한시간 정도, 총 두어시간 정도일 걸로 예상했다가 그 두배가 넘는 상영시간에 우선
놀랐고, 네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하다가 결국은 눈물 질질 흘리면서 정신을
놓고 봤다.

사실 이거 보는데 부담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허수아비였던
만주국에, 국제적인 정략결혼에... 도대체 이걸 어떻게 미화시킬 것인가 그걸 보면서 나는
또 얼마나 감정이 뒤틀려야 하나,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글들을 보니 제국주의를 미화시키지는 않았다길래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메이저 방송국이 초호화 캐스트를 긁어모은 야심작답게 가끔씩
허술했지만 대체로 장대했으며 시각역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보여 주었다.
뭐 나중에 다시 쓰겠지만 결국 문제는 제국주의 시각이 아니라 '당신들의 역사' 였다고
생각한다. 중국 인민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당신들만의 왕조'.
그러므로 그 아집과 무지가 당신들의 불행의 원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중국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는 우리의 영친왕 같은 인물이 아니던가. 황제의 동생이었고, 일본에 인질같은 유학을
갔으며, 육군학교를 다녔고, 일본황족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두었다. 인생역정이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가. 실제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간에 동질감을 느끼며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이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현명한 일본인 부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였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했을까.
얼마나 고달팠을까. 정략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혼이었다면 가장 잘 맞는 상대와
친우처럼... 그것이 그의 고달픈 운명에 그나마 하나의 선물이었나 보다.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실존인물이었으므로 더욱...

자, 그런데 일단 감상은 이 정도로 접고 내가 멀더는 아니지만 진실을 파헤쳐 보자.
그쪽에 대한 책들을 읽은지가 오래되었고 또 그다지 파고든건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력과
알고 있는 사실에 한계가 있겠지만 그동안 여기저기서 읽고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만주국' 은 중국 인민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 의미는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다.

만주국은 일본인이 세운 국가다. 만주에 대한 일본의 통치력을 키우기 위해 이미 망해
넘어진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를 데려다 세운(일본인이 왕이 되면 중국인들을
장악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순전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나라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부의가 일본을 싫어하고 히로를 박대했던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일본에 항거한 적이 없었으며 하다못해 조선의 고종처럼 '찍'
해보지도 않았다.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그는 한마디로 만주를 팔아넘긴 셈이다.
그것도 이미 몰락한 왕조의 왕이었던 그가 말이다. 청나라 역시 일본에 의해 멸망한 것은
아니다. 부의는 신해혁명에 의해 하야당했다. 내가 알기로 신해혁명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일으킨 혁명이다. 일본이 일정한 어떤 역할은 했을지라도 엄연히
신해혁명은 중국인에 의해 선택된 혁명이었다. 이미 중국은 왕조를 원하지 않았으며 ,
그러므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부의의 운명은 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를 데려다 일본은 허울좋은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그럴 의지도 없었다. 만주국을 세울 때 도망칠 궁리도 못했을까.
그리하여 자신의 백성들의 항일운동에 구심점이 되어줄 생각. 결국은 실패했지만
고종이나 의친왕처럼 말이다. 그것이 자신의 백성의 손으로 하야된 왕조과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쫓겨난 왕조의 차이란 말인가.

후케츠는, 그러니까 부걸은 그런 허상과 같은 왕조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쓸모없는
고군분투를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노력, 일본인들도 콧방귀를 뀌는 그런 노력 말이다.
드라마에 묘사된 대로라면 그는 온화하고, 자애스럽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만주국의 아무것도 아닌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귀하게만 자랐고 또한 일본에 의해 허울좋게 고귀하게
받들어지는 형을 설득해 만주국을 닫아버리고 자국내의 항일세력과 결탁해 자신의 형을
항일의 상징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렇더라면 설사 자신의 백성이 원하지 않아 쫓겨났던
왕일지라도 그들은 존경받는 왕실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해방후 적어도 인민의 적으로
수용소에 갇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화혁명 기간에라도 살아남을수 있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일본군이 자신들을 핍박한다지만 그런 일본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살아남지도 못했다.
만주국은 오로지 일본에 의해서만 의미가 있고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천황의 항복선언을 들으며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두려워 했고 러시아의 수용소에서
중국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던 것이 아닌가.
일본이름인 후기와 후케츠로 불리며 일본을 미워한다지만 일본에 의지했고 중국을
위한다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허울좋은 만주국에만 매달려 있었으므로 그들은 몰락했다.
자신들의 갈길을 잃어버렸다. 자신들을 존경하는 백성이 없으므로 그들은 불쌍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왕조의 영화에 매달렸으므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내 나라의 왕조와 그 세월과 과정이 비슷하여 더욱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자신들의 나라라면서 자신들의 백성이라면서, 그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술 마시며 슬퍼만 하면 존경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이 그렇게도 자랑인가.
내가 그런 왕조의 후손이라면 부끄러워 안으로 숨어들거나 사죄하며 자숙하겠다.
아니면 조상의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평생 봉사하며 살겠다. 황실의 후손이라 잘난척하며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기 불쌍해서 하는 말이다.
중국쪽은 모르겠고 조선쪽 말이다.

흠, 일본이 보기에 어쩌면 조선은 만주국보다 더 위험했나 보다. 그러니 만주국 쪽은
일본인의 피가 섞인 왕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조선은
아예 대를 끊어 놓으려 한 것 아닌가.(이방자 여사가 왕세자비로 간택된 것은 그녀가
불임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는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쿠도 중좌같은 사람은 평생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야만 하며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 그가 결국 부의에게
충성하게 되는 것은 대의명분이라던가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심이라기 보다는
복종할 곳을 잃어버린 그가 결국 명령받을 곳을 찾아 헤맨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물론 미운정도 작용했을 것이고.

조선과 중국의 왕족에 대한 일본의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듯 싶다.
중국의 황제였던 부의는 자식이 없었고 그 동생인 후케츠(부걸)에겐 딸이 둘인데 하나는
죽고 하나는 일본에서 일본인 남편과 살아가니 말이다. 다른 황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공산 치하였으니 그리 별반 영화롭지는 못할 듯 싶고.
조선에 이르면 더욱 참담한 기분이 든다. 반쪽 조선인 왕세자는 제대로된 가정도 꾸리지
못한채 유랑하듯 떠돌이 삶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한국말도 잘 못한다고 한다.
또다른 왕실 가족이라는 비둘기집을 부른 아저씨는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은지 이해
안가는 행각을 벌이고 있고. 도대체가 황실이라는 말이 안나오는 것이 아무 힘도 없는
상태에서 제국선언만 하면 다냐는 거지. 나라를 멸문지화를 만들어 놓고 황족은 무슨.
그렇다고 왕실재산을 무작정 빼앗아 비참하게 살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친일파들도 떵떵거리고 잘 살잖아? 이승만이 왕실의 방계라서 직계였던
자들을 질투해서 벌인 일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리 허황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끝맺는 마당에 사족 몇 개...
1) 나카무라 토오루 아저씨가 연기했던 토오야마(맞나) 중좌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는 왜 애초에 중국땅을 떠돌아 다니고 있었을까. 뭐 볼일이 있다고.
설마 후케츠와의 약속 때문에? 에이, 그건 오버고 토오야마상의 뒷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누구 아시는 분... 나카무라 토오루 아저씨 오랜만에 봤더니 많이 늙으셨더만.
그래도 반갑더이다. 그런데 그런 단역으로 출연하신건 주가가 떨어져서 그런건 아니죠?
특별출연이라서 그런거죠? 난 아저씨 몸매선이 너무 좋아요.-_-;;;

2) 소리카치 타카시상은 아무래도 사쿠라이란 이름과 인연이 특별한가봐.
<비치보이스>에서도 사쿠라이 였잖아요? 아저씨 머리모양 너무 웃겼어요.
그래도 본판이 워낙 괜찮으니까 봐주긴 했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격렬한 전투에서
권총하나 들고서 돌격하는건 너무 어불성설 아닌가요? 실제로도 권총 하나 들고
덤빈건 아니죠? 음, 아저씨같이 좋은 사람도 독립군 꽤나 때려 잡았겠지.
그 이름도 찬란한 관동군이잖어.

3) 후케츠와 히로의 장녀인 에이세양. 왜 그렇게 죽어야 했지? 당신들의 사랑에 어떤
장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신쥬라니...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잖아.
주은래에게 편지까지 보낼정도로 현명하고 생각도 깊은 사람이. 그게 로망인 거야?
아무래도 왕실가족과 신쥬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듯. 덕혜옹주 딸도 그렇게 죽지 않았나?

4)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왕조의 세월>이란 드라마가 생각났다. 10여년전 쯤에
특집극 형식으로 방영된 드라마 였는데 이방자 여사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었다.
다른 배우들은 기억이 안나고 이방자 여사 역할을 이휘향이, 민갑완 여사 역할을
이덕희가 맡았었다. 당시 상당히 관심있게 봤었는데 보면서 내내 생각이 나더군.
내용은 잘 기억 안나고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아무래도 구하기 힘들겠지.

5) 이방자 여사가 쓴 회고록을 서치해 봤더니 절판이더군. 너무 무관심한거 아냐?
좀 복간해줘요. 반드시 살테니...-_-;;;

6) 음, 유전이 그런 뜻이었군. 난 몰랐지. 난 또 '기름'을 가리키는 유전인지 부모자식간의
유전인지 헷갈렸었지. 내가 한문엔 빵점이거던.-_-;;;

7) 히로역의 토키와 다카코. 이 여인네를 어디서 봤는지 통 기억이 안난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생각이 날듯말듯, 가물가물 하다.
얼굴선이 중국사람같이 생겨서 첨엔 중국사람인줄 알았다. 남편이랑 부인이
국적 바꿔서 출연하나 보다 했지. 장백지 닮은듯도 싶고. 혹시 진짜 장백지 아냐?
진짜루 어디서 보기는 봤는데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안난다구. 어디에 나오셨어요?

8) 다케노우치 유타가는 상당히 일본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청나라 옷
입혀 놓으니까 또 중국사람 같이도 보인다. 부의역할을 맡은 배우와 실제로
닮아 보이기도 하고. 안경이 비슷해서 그런가? 난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흑~~


                                      -이 글은 7/17/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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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 히로는 열세살 위인 자신의 누나, 토우코를 토우코씨라고 부른다.
돌아가신 엄마와 병석에 누워있던 아빠를 대신해서 집안을 돌보고 이끌어나간
누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은 호칭인 것이다.
황금같은 20대를 집안과 일에 묶여 지낸 토우코는 이제 서른이 넘었다.
그리고 인생의 다음장을 조심스럽게 시작하려 한다.

히로의 누나관찰기와 히로 자신의 성장만화 정도로 요약이 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얼굴과 정신세계를 지닌 매력적인 남매의 이야기는 요란 벅적지근한
사건과 갈등이 없음에도 지루하지 않고 잔잔하게, 단아하고 아름답다.

토우코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갈 오노 스구르는 요란한 매력은 없지만
믿음직스럽고 잔잔하다. 이런 남자가 좋다. 처음처럼, 앞으로도 잔잔할 남자.
히로 역시 짖궂지만 어른스럽고 인생의 위기들을 호들갑 떨지 않지만 단단하게
헤쳐나갈 것 같아 사랑스럽다. 이런 남자들이 좋다.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고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알고, 그 심리를 헤아릴 줄 알고, 섬세하고,
따뜻하고... 그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토우코와 메구미 역시 일방적이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고, 똑똑하고, 성실하다. 이런 사람들이 좋다.

아, 그리고 자신의 동생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애정과 사랑을 받는 누나라니...
남동생의 누나인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토우코는 기나긴 세월동안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속박했을수도 있었던
아빠의 병간호를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며 나는 그 기간동안 아빠와
기나긴 장기를 두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히로는 누나를 잘 뒀고 토우코는 동생을 잘 뒀다.
서로에게 다른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 해도 최초의 가족이었던 그들의 애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참 좋다.



                                  -이 글은 7/12/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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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파워업>은 내 생각보다 꽤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처음엔 그저 그런가 싶은 발랄,성실,건전 청소년 스토리인가 싶더니
어느날 갑자기 쌍둥이의 애닲은 사랑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아, 성실한 제목에 걸맞지 않는 그 파격성이여...-_-;;;

일단 처음엔 카나와 츠카모토의 수줍은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길래 당연히
얘네가 주인공인 줄로만 알았다. 그림도 아직 틀이 잡히기 전이라 어딘지 엉성.
그때까지는 평범했다. 그러다가 권수가 흐를수록 예전에 <에덴으로 오라>에서
느껴졌던 흡입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일단 스토리도 스토리려니와 사에와
소우타의 심리가 섬세하게 펼쳐지고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표정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눈을 뗄수가 없었다.
작년엔가 읽었는데 그당시 오랜만에 가슴 두근거려하며 읽은 작품이었다.

사실 해일리의 취향이라는 것이 상당히 독특... 내지는 엽기적이어서 야오이에
열광하는 것은 물론 근친상간(아, 이 호러적인 단어여...-_-)이라는 주제도 상당히
즐기는 편인데(천사금렵구도 첨엔 그래서 봤다지...) <오늘도 파워업>이 이런
방향으로 흐를줄은 정말 몰랐다는... 첨에 그런 기미가 보일때는 사춘기적 감성으로
어릴때부터 함께 있었던 존재들에 대한 애착 내지는 집착의 표현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결국은 서로 제 자리를 찾을 걸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더니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더라는...
우와, 정말로 일본적인 감성인가 부다 하고 벽을 쳤다는... 왜 벽을 쳤나구?
예상이 빗나간 것이 통쾌해서 그렇다고나...^^ 어쨌건간에 한국에서 이런 작품이
출간될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옛날 해적판 시대였다면 둘 중의 하나는 주어온
자식이었다라는 식의 억지 설정을 끼워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내 취향이 희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거나 지나친
억지설정에 치중한다거나 하는 것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붙어먹는다는(-_-) 식의 스토리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쌍둥이들의 이야기에는 그런 끈적함이 없다. 어릴 때부터 느껴오던 그들의
미묘한 감정이 일상적으로 그러나 섬세히 포착되어 있다. 그들의 움직임, 표정, 손짓
하나하나가 치밀한 계산처럼 맞물려서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나는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오늘도 파워업>을 꽤 재밌게 읽을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에덴으로 오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읽는 재미가 솔솔하던
<오늘도 파워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8/22/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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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타쿠야의 2003년작 이던가?
시청률 20% 넘기기가 어렵다는 일본에서 30% 이상씩을 넘긴 드라마라고 한다.
나오고 있던 당시에는 언젠간 보겠지 해서 보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일단 손에 잡고 보니 하루에 다섯 개씩 이틀만에 작파가 되더군.

구성이 깔끔하고 재미있었다. 일본드라마 특유의 감정에의 강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싸나이들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답지 않게 그 강도는 약한 편이었고
그러므로 그다지 무리없이 받아들일수 있는 수준이었다.
비행기 나오고 제복 나오다 보면 거의 장식하게 마련인 비행기가 뜨고지는 장면들과
멋있는 조종사들의 후까시들을 잔뜩 보여주고 멋있지, 멋있지 강요하는 장면들이
최소한 필요한 정도로만 등장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좌충우돌 열혈남아 부조종사인 하지메 신이치 역의 기무라 타쿠야는 역시 맡은 배역에
그럴 듯 하게 녹아든 느낌이었고, 웃긴줄만 알았던 츠츠미 신이치의 진지한 모습이
첨엔 적응이 안되다가 나중에는 꽤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왜 다른 배역들 이름이 생각이 안나지? 애교많고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 아니어서
너무 맘에 들었던 그 엔지니어 아가씨, 글구 어른스럽고 이해심 많은 스튜어디스 언니.
댁들 이름이 뭐였죠? 역시 내 기억력이 이제는 3일짜리가 되어가나 보군.
몇주만에 그렇게 싸그리 잊어버리고 말다니.

윤손하가 나오는 장면들은 한회에 한번 정도, 그나마도 안나온 회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진지, 땅파는 모드로 가다가 윤손하가 나오는 한 장면으로 인해
배시시 웃을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는데 그만하면 꽤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말이다.
나중에는 극적 반전(-_-) 비스무리한 것도 제공하고. 요즘 가끔씩 윤손하가 안됐다는
생각도 드는터라 감정이입이 더 잘되었는지도... 일본진출 하겠다고 그 생고생을 하고서도
아직 A급이 못됐는데 배용준이나 최지우는 국내활동만 하고서도 이름 잘만 날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힘내세요. 손하상~~~^^
         

                                   -이 글은 5/24/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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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지 재밌다가 중간에 뭔가 이상하다가 결국은 무지 지루해지고 말았다.
그냥 드라마 본편으로만 끝냈어도 한결 재미있었을 텐데 왠 스페셜에 극장판까지...
인기 많으면 늘어지는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무진장 맹하고 지독한 방향치에다가 맨날 비슷한 촌스런 옷만 입고 다니고
줄기차게 들고나오는 커다란 기저귀 가방(-_-) 같은것에다 머리도 잘 안감아서
구박당하고 뭔가에 몰두하면 잠자는 것이나 밥먹는 것까지 잊어버려서 결국 쓰러질
지경에 이르고 마는, 그러나 사건수사의 천재인 시바타 준. 어떤 사건에 맞부딪치면
모든 것을 다 잊을정도로 몰두하다가 결국 맹한 눈을 들어 "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 버렸는데요." 하던 김전일보다 훨씬 매력적인 궁극적으로는 무척 귀여운 여자.

굉장한 후까시에다가 엄청난 무게에다가 뭔가 과거의 비밀을 감추고 고독한
표정을 짓고사는 느끼남 마야마 토오루.

이건 정말 캐릭터의 승리다. 사건의 구조나 기승전결이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촌스런 감마저 느끼게 함에도 그래서 결국 막판에는 드래곤볼까지 떠올리게 함에도
끝까지 보고야 말았던 것은 스토리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시바타 준, 그녀가 보고 싶어서였다.

보통 이런 추리구조를 가진 작품이라면 만화등 영화든 드라마든 주인공은 남자이고
여자는 거의 남자의 보조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전일의 미유키처럼 말이다.
그런데 <케이조쿠>의 주인공은 명실공히 시바타 준이다.
마야마 역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케이조쿠는 시바타 준의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신비스런 과거는 마야마에게 양보했지만 그 캐릭터의
한결같음은 아무나 갖출수 있는 매력은 아닌 것이다. 설마 벌여만 놓고 해결은
마야마가 다 하는거 아냐? 하는 우려도 있었다. 확실히 1회의 사건은 그런감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시바타 준은 자신의 자리를 꽉 움켜쥐고 열심히,
맹렬히 사건을 해결해 간다. 중반까지는 확실히 시바타 준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마야마는 시바타의 보조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다.

글쎄, 그냥 드라마 본편으로만 끝냈으면 정말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열렬히 한다. 중후반, 극이 늘어지고 황당해진 감은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페셜과 극장판으로 가면 갈수록 오, 맙소사.
그야말로 부활의 경연장이 아닌가. 미치도록 지루했다라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결국 극장판에 이르러서는 안타깝게도 패스트 포워드를 해가며
스토리의 맥락만 이해하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원조교제를 그런식으로 다루는 것은 확실히 문화의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듯 싶다. 그것도 경찰이 말이다. 그 장면이 사건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는 기능은 했을지라도 극을 진행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장면도
아니고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도 아니었다.
그저 재밌으라고 집어넣은 장면 아닌가. 당연히 그 끝은 파멸인줄 알았다.
약간의 코미디를 동반한. 그런데 결국 매우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거기다 그 책임소재가 그 부인으로 넘어가는 인상까지 줄때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 어쩌고 해도 그건 확실히 한국 드라마가 옳다. 드라마는 예술이 아니다.
어차피 시청률과 광고료로 먹고 사는 이상 재미만 있으면 어떤 장면도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표현의 자유이고 또 무엇이 군더더기인지 이제는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판단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매우 재미있고 기억에 남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점과 몇부분의
표현수위 덕분에 <케이조쿠>는 끝까지 유쾌한 드라마로 기억되지는 못할 듯 싶다.
그래도 별점을 매기라면 세 개정도는 줄 수 있을 듯 싶다.
무엇보다 시바타 준이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으니 말이다.


                                                           -이 글은 5/24/2004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4




'참 아름다운 별이다'로 시작하더니 '참 아름다운 별이다'로 끝나더라는
충격(?)을 던진작품. 아직까지도 그만한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



캐릭터...


시이라젠느(유신혜)
- 원래는 평범한 천문학 교수의 딸이었다.
어쩌면 카피온의 왕녀 사라를 만난 적이 있던 추억만을 간직하고 살수있는
평범한 소녀일 수도 있었는데 결국은 그러지 못하게 됐다. 주인공으로는
다소 모호한 성격이었다는 생각. 전형적인 소녀처럼 청순발랄하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자기 주장 똑 부러지는 타입도 아니고 가끔씩 레디온에게 희스테리
부릴땐 쟤 왜저러나 짜증이 나기까지. 어쨌거나 그녀는 카피온인이라기 보다는
지구인 이었나보다. 마지막에 '지구'라는 단서를 알려주지 못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난 이 소녀를 별로 좋아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가진
불행도 천문학적인 힘도 아니었지만 또한 새로운 세계에의 이질감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은 인정하지만 그토록 적응치 못하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임을
망각한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마치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나를 뒤흔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것 같이 행동하는
타입은 그리 마땅치 않다.


레디온
- 그야말로 충성충직의 대명사인 사람. 흑단같이 긴머리 휘날리며 주군을
위해 충성하던 '헤인 레디온' 처음엔 모호한 태도로 시이라젠느의 속깨나 썩이더니
결국은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바치며 자신을 위해 슬퍼하지 말랬던가 울지
말랬던가 하며 죽어간 남자. 흐음. 이 이상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는 레디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차라리 성장배경에 따른 그의 인격형성이나 깊은 속내
같은 것이 부각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저 대를 이어 충성한다는 이미지를 짖게
풍긴 이 사람은 원체가 선과 악이 혼재된 듯 왔다갔다하는 캐릭을 좋아하는 내게
별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충성하는
캐릭터는 그래서 현실적이지 않으며 그렇기에 내게 별로 어필되지 못했다.
카리스마 면에서도 오히려 아르만에게 밀렸다는 느낌.


아르만
- '별빛속에'를 통털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첨엔 단순히 잘생겨서(-_-)
좋아 했던 듯도 싶은데 암튼 첨엔 어쩌면 악역일수도 있겠다 싶게 등장해서는 곧
순정만화의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인 '여주인공에게 무한한 사랑을'의 길을 걷게
되는 남자. 사실 이 사람이 왜 시이라를 그토록 좋아하게 되었는가의 부분이 좀
미흡하단 감도 없진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레디온보다 이 사람에게 더 설득력을
발견했다.(왜 그랬는진 나도 모른다.)


아시알르 -
여성 캐릭터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첨엔 단순히 예쁘고 성격 나쁘고
욕심많은 그런 여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겪다보니 똑똑하고 자부심 강하고 무엇보다
제 조국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왕위를 놓고 시이라측과 전쟁을 벌이던 중에
이대로는 카피온에 너무 피해가 크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이 여자가
시이라보다 더 여왕 자격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긴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인으로
살아온 시이라에게 그런 조국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일수도 있겠지만...
시이라는 난세의 여왕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난세 이후의 정리와 통치는 아시알르
같은 인물에게야말로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왕 -
이름이 나왔던가? 나왔어도 잊어먹었다. 따지고 보니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자. 어머니로서는 실격인 여자. 아마 아시알르에게도 어머니로서의 따스한
정을 보여준 적은 없지 않을까 싶은 캐릭터. 그렇다면 여자로서는? 기레스를 그토록
애증에 휩싸이게 했으니 성공인가? 뭐 왠지 그런 듯 싶지 않기도 하지만...


기레스 -
마치 최고의 악역인 듯 싶게 등장해서는 허무하게 사라져간 남자.
최고의 궁금증. 여태까지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을 자기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토록 쉽게 태도가 바뀔수도 있는건가? 대신 죽을만큼? 그것도 '내 딸'이라 부르며
말이지. 그것이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시이라를
그토록 미워했는지의 이유조차도 불분명하다. 여왕과 닮았기 때문에 아시알르를
예뻐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단지 그 반대급부로 시이라를 미워하게 되었단 말인가?
흐음... 미스터리...



<별빛속에>를 중간에 끊김없이 전질을 다 볼수 있었다는건 분명히 행운이었다.
난 대작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을 중2 가을에 몰아서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별빛속에>역시 그 가운데 있던 작품이었다. 그때 본 작품들의
공통점은 내가 그 작가님들이 어떤 분들인지를 몰랐다는 것과 당연히 그 작품들도
어떤 것들인지를 몰랐다는 것.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별다른 기대없이 본 작품들이니
당연히 그 감동은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별빛속에>역시 별다른 기대없이 본 작품이었다.  그 전에 <현재진행형>과
<17세의 나레이션>을 너무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전학가서 다니게 된 새로운
만화방에 당시 21권이나 하던 <별빛속에>가 있었을 때 그 작가의 작품이면 최소한
실망은 안하겠지 하는 생각에 빌렸던 작품이었다. 과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어서 1권 뒷부분만 대략 훑어봤는데 여주인공이 배구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와서 이것도 학원물이겠거니 했다. 나중에 보니 커버가 심상치
않았는데(우주 나오고, 이상한 옷입고) 그땐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들도 챙겨보지
못했다. 다만 이미 학원물을 쓴적이 있는 작가이니 이번엔 좀 긴 학원물을
그렸나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과외가 끝난건 9시가 넘어서였고 책상서랍에 숨겨놨던 <별빛속에>를 꺼내며
읽다가 12시 넘으면 자고 낼 다시 읽어야지 했었다. 한권 보는데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도 않을 것이니 잘하면 12시까지는 다 읽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서 다 읽고 나니 새벽 2시였던가 3시였던가 암튼 시간이 꽤 흘러
있었는데 그 동안에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역사물도 아니요 학원물도 아닌 그 이름도 신선해 마지않는 SF.
물론 남성만화가들의 작품 역시 즐겨 봤으므로 그다지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읽었던 수많은 SF들을 다 갔다대도 모자랄 것 같은 그 스케일과 섬세함과
가슴 메어짐과 허무한 관조들... 그림이 단순히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수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눈을 보면 왜그리 슬프고도 답답해지던지. 대사도 없이 그냥
서있기만 하는데도 그 눈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이는 감정을 느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 지구에서 다시 한번의 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시이라.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를 잊은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다가
순간 흐르는 눈물. 그러다 하늘을 보며 '참 아름다운 별이다' 하는데 순간 첫 장면과
매치되는 것이 가슴 싸한 감동이. 같은 하늘이며 같은 말인데도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무엇보다 시이라는 유신혜가 아닐 것이고 이젠 옆에 아버지도 없고
그리고 중요한 사람 하나를 잊고 있을 것이고... 그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첨엔 차라리 죽이지 했었는데 살아 있어서 더 그런 엔딩이 연출되지 않았던가 싶다.


아, 사실 지금의 나는 참 세속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유신혜가 살았던 시대라면 오랫동안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어 있었을 것이니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족도 없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제대로 공부를 했을리 만무하니 대학은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한때는 왕녀였으며
카피온을 구했다는 사람이 구차한 목숨 부지하자고 궂은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을 연출해야 하나 하는 뭐 그런...-_-;;;


아마도 신일숙님의 <1999년생>과 함께 후속작 논란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겨 놓자는 생각. 어떤 후속작이 나와도 전편의 감동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즘에 와서는 메카닉적인 부분들이 논란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사만호의
그 무게감 없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은 요즘에 보기엔 촌스럽기는 하지.
그렇다해도 그당시는 자료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강경옥님은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SF가 아닌 그안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에 더 비중을 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한면에 치중하다보면 다른 한면은 포기할수도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말이다.  


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카피온의 신은 지구의 신과도 일치하는 것일까.
시이라와 그 숱한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모두 신의 손바닥 놀음인걸까. 여섯살때 유치원에 갔다 오다가
가게에 들러 캐러멜을 하나 샀었는데 문득 내가 오늘 유치원 갔다 오다가 캐러멜
사는 것까지도 모두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일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해일리는 성당 부속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선생님들이 엄마말씀 잘듣고 착한
일해야 훌륭한 사람되고 천당 간다고 그랬었다. 그런데 또한 하느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정해놓은 대로 산다고 그랬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내가 착한애가 될지 나쁜애가 될지 모두 정해 놓았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에 닦던 이 안닦고 하던 세수 안하고 그랬었는데(내가 어떻게 해도 다
정해 놨다매? 하는 생각에...) 그러다가 내가 이런 생각 하는 것까지도 또 하느님이
정해 논건가 하는 생각에 무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어린 마음에 내린 결론은 이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까지도 정해놨나보다
하며 하던대로 살자였는데(안하던 행동 하기가 그리도 힘들더이다. 이래서 주입식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폐해를 만듭니다. 하느님이 정해 놓기는 했는데 왜 정해
놨는지는 설명을 안해줘서 어린 것이 그 혼란을 겪었으니...) 아마 그 어린 생각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는 않았던 듯 싶다.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단짝에게 한번
얘기했다가 개무시 당하고서 혼자서만 간직해오다가 나중에 <별빛속에>에서도
그 비슷한 생각이 나오길래 어찌나 반가웠던지... 결국 결론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마음에 덜 쓸쓸해졌단 기억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리던 유치원 시절만큼도 진지하지 못한 것 같다.
무조건 쉽게쉽게, 그러면 그런가부지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1/25/2002 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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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 라이트>는 내가 실질적으로 보게된 나리타 미나코의 첫작품이다.
물론 가장 처음에 본건 <사이퍼>이지만 그건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본 작품이니...

그림이 깔끔해서 빌려 왔는데 보다보니 이상하게 친근했다.
왠지 어디선가 한번씩 본애들 같은 애들이 종종 등장하는게 왠지 이상했지만
<사랑은 약속이야>랑 연결시킬 머리가 그당시 내게는 없었다.
일단 이미 몇 년 세월이 흘러서 <사랑은 약속이야>의 내용까지 희미해져 있었으니까.
진실을 알게되고 난 후에도 알렉스가 <사이퍼>에도 나왔었는지가 헷갈렸었으니.
물론 나중엔 나왔었던 것 같애... 로 마음이 굳혀졌지만...

굳이 <사이퍼>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알렉스와 시바의 캐릭터도
매우 매력적이고 독특했다. 이거 읽고서 컬럼비아 대학에 가고 싶어졌었다.
물론 성적이 안되서 못갔지만...^^

국적을 초월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알렉스 레바인. 여자같은 얼굴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씩씩한 소꿉친구 앰브로시아를 짝사랑하고 있는 소심한 녀석.
그리고 <사이퍼>에서보다 더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성장한 시바. 사실 <사이퍼>
에서는 사이퍼와 아니스 사이에서 함께 뭉뚱그려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한결 더 정돈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시바는 두작품 모두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지만 혼자서 주인공을 해본적은 없는 모양이군. 왠지 좀 불쌍하다.

암튼 <알렉산드 라이트>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매력적인데 거기다 덤으로
<사이퍼>의 소재까지 알수 있게 되어서 이넘이 얼마나 이뻤는지...
이녀석은 내게 더없이 이쁘고 사랑스럽고 고마운 효자같은 녀석이다.


이 글은 8/12/2001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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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마 신지가 극본을 썼기 때문에 특별히 독특한 드라마가 된 건지,
아니면 일본 드라마의 시스템이 노지마 신지라는 독특하고도 걸출한
작가를 탄생시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기말의 시>는 꽤
내 취향에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원래 성향 자체가 감정기복이 심하고 극적 사건이 난무하는 설정을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에, 아니 그런 설정들이 지나치게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겠지만 듣기로는 꽤 파격적인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리 복잡하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내가 꽤 이런 작품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반증이겠지.
각 회마다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이 주제가 되고 그 주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무작정 아름다운 사랑, 혹은 순수한
사랑은 등장하지 않는다. 처절한 사랑, 변덕스런 사랑, 이기적인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해 나간다.

이 옴니버스 스토리에 시종일관 등장하며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진짜 이름은 모르는(-_-) 모모세 교수, 사토미 선생, 미야 등이다.
일본 배우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순수하고 어리숙한 노아 와타루
역을 매우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비치보이스에서의 엘리트 청년, 별나라 금화에서의
제멋대로 도련님, 얼음의 세계에서의 이성적인 보험조사관, 냉정과 열정사이에서의
고독청년과는 또다른 분위기였다. 사실 그러고보면 다케노우치는 조연시절에 꽤 이런
어리버리한 역할을 맡았던 듯 싶다. 제목도 기억안나는, 대충 1,2번만 보고 끝내버렸던
몇몇 드라마에서 자주 그런 모습의 다케노우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쟤가 주인공보다
더 괜찮은데 하며 안타까웠더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기말의 시>는 몇 년전 작품이니
이 드라마에서 그가 특별히 이미지 변신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는 어떤
이미지도 꽤 진지하게 어울리는,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무척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괜찮은 배우임에 틀림없지 않나 싶다.

처음부터 너 정체가 뭐야? 했던 미야는 역시 그렇군 하는 느낌이었고 꽤나 부패교수처럼
등장했던 모모세 교수는 갑자기 인생의 달관자가 되어 모든 사건의 키를 쥐고 흔들어 댄다.
그게 무척 신기했다. 그렇게 도사같은 양반이 왜 그랬대? 하는 느낌이랄까.
뭐 그 사건을 통해 일종의 개과천선을 한 거겠지. 과거도 발목을 잡았고.
사토미 선생은 자세히 보면 나카야마 미호와 마츠시마 나나코를 좀 닮은듯도 싶은데
그게 묘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마스크를 가진듯한 느낌이 든다. 그다지 미운 얼굴이
아님에도 좀 촌스러웠다. 그리고 사토미 선생님. 그대의 패션감각은 정말 너무한다 싶지
않습니까? 아니 어째 20년전 패션을 입고 다니십니까. 그러고 보면 일본드라마의 여자들은
옷이 매우 촌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머리모양도 허구헌날 그 모양이고. 요즘은 좀더
나아진 듯 싶은데 내가 일본드라마를 처음 봤던 10년 전에는 정말 경악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일본드라마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한국드라마는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체검열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쪽대본과 사전제작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러므로 똑같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제작이 되는
영화에 와선 오히려 한국영화의 수준이 월등히 높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일본드라마
특유의 과장과 오버가 이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런 면들이 일드에
몰입하는데 무진장 방해가 되었었는데 다행이다 싶다. 물론 모모세 교수의 씬에서는
역시나 하는 감정과잉이 표출 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 깔끔한 구성과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드라마는 캐릭터의 승리다. 어느 인물 하나도 전형적인 인물이 없다.
모든 등장 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그 역할을 충분히 완수해 낸다.
한회에 한씬만 등장했던 치아키와 그 동생들 마저도 드라마에 없어서는 안되는 감초와
복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걸핏하면 헤메는 한국드라마와는 딴판이다.
이런것들은 일차적으로 제작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하다못해 반이라도
촬영을 끝내고 방영을 시작한다면 확실히 해결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사족 하나, 개인적으로는 5회의 내용이 제일 인상깊었다. 무지 뻔한 얘기였는데
진짜로 일을 저지르다니, 하고 놀라버렸다.
사족 둘, 3회의 그 노출신(-_-) 필요하긴 했지만 오올, 진짜로 그래도 되는 환경이란
말이지 하는 마음이랄까.
사족 셋, 마지막의 풍선사건. 인간적으로 혼자힘으로 그 많은 풍선을 어떻게 띄우냐?
그 짧은 시간에. 그건 너무 오버였어.
사족 마지막, 헬로 베이비 하며 주제를 나타내는 매 끝회의 설명과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마치 뮤비처럼 편집해 보여주는 엔딩은 매우 뛰어난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끝난후에도 적절히 여운이 남는 것이 오래된 앨범 같았다.


                                                                                              -4/23/04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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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를 처음 본건 열일곱살 때였다. 미국온지 일년 되었을 때 첫 여름방학을
앞두고 소위 종업식이라는 것을 하고서(그래봤자 단지 학교에 나갔을 뿐이지만...
마지막 날은 거의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나와도 되는 날이었는데 그걸 몰랐고 또한
그런건 상당히 불량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해일리가 학교에 갔더니 어떤 클라스는
달랑 나하나 앉아 있기도 했고 어떤 클라스는 기껏 갔더니 선생이 무지 귀찮아 하면서
(저도 못가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 거의 나랑 비슷한 시기에 미국온 한국 애들만이
학교에 남아 있던 형편이어서 소위 문화적 충격이라는 것을 느끼다가 우리 만화책이나
보자 하면서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물론 그후엔 절대로 마지막날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암튼 그때 골랐던 것이 <사랑은 약속이야>란 열두권짜리 작품이었다.
그당시 내가 그것이 어떤 비중을 가지고 어떻게 열광되는 작품이었던가를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거기다 난 정말 순진하게도 작가가 타이틀에 써져
있던대로 한보아란 사람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신인인가부다 생각할 수밖에... 지금이라면 그림만 보고도 일본만화와
한국만화를 가릴수 있다. 좀 심하게 하면 그림을 가리고 글씨만 보여줘도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 정도는 맞출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번역체의
문체는 아무리 가릴려고 해도 티가 나니까 등장인물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대사만 듣고서도 그 작품의 국적을 가릴수 있는 것은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그때는 면역이 없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순진했던(?) 해일리가 어찌 작가 이름을 사기쳤으리라고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_-;;;

별다른 기대를 하지않고 빌렸었기 때문에 매우 뿌듯해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어찌나 신선하고 새롭고 잔잔한 가운데 일상적인 심리묘사를 그리도 탁월하게
해내는지... 이야, 괜찮은 신인 하나 건졌다라고 뿌듯해했었다. 끝까지 그렇게
뿌듯해하며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오히려 나중에 더 충격을 먹었을라나?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건 몇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뭔가 미묘한 느낌이 이상하게
달랐는데 특히 사이퍼의 한국인(그러니까 일본인) 친구가 등장했을 무렵부터
확실하게 이상하단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도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고정관념의 힘은 이래서 무섭다.-_-) 그들이 한국(그러니까 일본)을
방문하면서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고기 모양이라든지 이해가 안가는
명절이라든지 밥먹을 때 각자 상을 놓고 먹는다든지 하는 것들... 설마 하던게
현실로 다가오자 황당한 허무감에 한동안 입만 벌리고 있었다. 어, 속았네... 하던
그 얼떨떨함... 이렇게 괜찮은 작가가 일본 사람이었단 말야? 하는 배신감...
아,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물론 그때 이후로는 일본 작가들이 아무리
한국이름을 달고 나왔어도 헷갈릴 염려 같은건 없었다. 정말로 혹독히 배신당하고(?)
뼈저리게 얻은 경험이었다.(지금 생각하면 귀엽지만 그때는 진짜로 충격 받았었단 말입니다.-_-)

어쨌건 그 당시에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고 있다가 그후로도 가끔씩 생각만 하다가
<알렉산드 라이트>를 읽으며 이상하게 친근감 느껴지는게 이상하다 싶었더니
어떤 인터넷 페이지에서 무심코 <알렉산드 라이트>를 검색해보다가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올라와 있던 <사이퍼>의 줄거리를 읽으며 다시한번 멍해졌다.
그게 그거였구나... 아, 그게 생각보다 유명했던 작품이었단 말이지? 하던 충격,
그리고 묘한 즐거움. 적어도 내 개인사적으로는 절대로 잊을수 없을 작품이었던
<사랑은 약속이야>가 많은 이들에게 화자되는 작품이었다니 내가 괜히 엉뚱한
거에 발목 잡힌건 아니었구나 하는 뿌듯함 같은 것이 있었다.

이 <사이퍼>는 강경옥님의 <17세의 나레이션>같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나이대를 살아가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아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랄까. 충분히 무거울수 있음에도 적절한 선을 넘나들며 때로 산뜻하고
종종 유쾌하며 때때로 공감어리고 가끔씩 우울하기까지 한 것이...

어쨌건 가끔씩 나를 괴롭혀오던 -그렇다면 원작자는 누구인가- 하는 고민에서 깨끗이
빠져 나올수 있어 반갑고 그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였단 것이 고맙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 기쁨을 종종 누릴수 있을 것이 즐겁다.
<내추럴> 역시 상당히 좋아하고 있으므로...


이 글은 1/25/2002 에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
밑줄긋기2008. 6. 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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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프랑스 혁명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아무래도 나는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프랑스 혁명이 근대를
일으킨 시민 정신의 산물이었다고만 볼수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중인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처음엔
그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길어지고 그들의 후손들이 일정한 교육까지 받아 알게 되는 것이 많게
되는 시점에 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귀족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먹을 것이 없어 포화 직전이던 백성들은
그들의 좋은 타겟이 되어 주었다.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백성들에게 그들은 아주 좋은 지도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자 그들은 이제 그만 하고 싶어했고 아직 가지지 못한자들은
계속 나아가길 원했다. 이것이 그후 거듭되는 파행에 대한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지나친 비약이라 할까? 물론 때가 되었으니 일은 났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순수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순전히 나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집단 행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한들 일어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창한 목표의식보다 단순한 욕심이 더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먹힐때가 있다. 아는 것 많고 가진 것 많으니 귀족이 되길 원하면 어떻고 먹고
살길 없으니 먹고 살 것을 요구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이제까지 가진 것 많았던
이들에게 우리도 좀 나눠 갖자고 요구한들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또한 그리 잘난체할 일도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마치 순교자인양
스스로에 대한 세뇌에 취해서 피에 젖은 길로틴을 내리치며 파행을 거듭하는
정부를 간신히 유지하다 결국은 또 황제를 맞이하는 뒷일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테르미도르>는 그런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사색적인 혁명가
줄르가 등장하고 피에 젖은 상큘로트 유제니가 등장하며 또한 단순히 복수심만으로
혁명의 반대편에 서는 알뤼느 같은 여자도 등장한다.

나는 줄르를 참 좋아한다. 귀족으로 태어나 충분히 먹고 살 것 많았음에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혁명을 선택한 남자.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환상에
젖어 있었을지라도 그래서 혁명이 자신의 가진 것을 도륙내며 아버지까지
살해하는 것을 지켜보며 절망할지라도, 혁명의 순수하지 못함을 괴로워하며
비난할지라도, 결국 그것이 그의 태생적인 한계일지라도 적어도 타락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상을 끝까지 유지하는 남자. 온유한 부드러움 속에 강철같은 펜을
지니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그것을 자신의 성장으로까지 발전시킬수 있는 사상가.
그리하여 진정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줄르 프랑소와 드 플로비에.(풀네임이 이게 맞을까?-_-)

유제니에게 그의 길은 처음부터 그것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버려진 사생아.
가진 것 없는 상큘로트. 그런 그에게 어찌 환상과 이상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혁명이 그이고 그가 곧 혁명인 것을. 그러기에 혁명이 그를 버렸을 때 그는 곧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꿈은 아주 소박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배고프지 않은 세상을 꿈꾸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아주 작은 소망
하나를 더해 레몬이 열리던 숲에서 뛰어놀던 소녀의 곁에서 살수 있기를 원했을 지도...

세자르 시락... 그는 <테르미도르>를 읽으며 얻은 귀중한 선물이었다.
혁명을 꿈꾸며 혁명을 노래했던 시인. 그러나 변질되어 가는 혁명에 절망하다가
결국 혁명에 의해 살해당하고 마는 혁명시인. 그러나 그래도 혁명을 사랑하여
열월의 길로틴 아래 한송이 제비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읆조리던 그.
사형 선고를 받으며 그가 쳐다보던 먼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그곳에서 절망을 보았을까 희망을 보았을까.

그들은 아마도 세모속에 네모를 넣을수도 있고 네모속에 세모를 넣을수도 있던
시절을 살았나 보다. 천년의 세월을 일년에 밀어 넣으려던 스스로를 찬란한 신의
이단아라며 자조하던 그들은 그 시절의 광기와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부산물인
것일까. 그러나 적어도 가볍고 무책임한 입술들에게 멋대로 떠들지 말라고
일갈할수 있던 그들은 떳떳하다.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그 시절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테르미도르>에서 얻은 작은 즐겨움은 역시 생 쥐스트였다. 단지 예뻤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일리가 총애해 마지않던 그는 <테르미도르>에서도 역시 등장신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했던 말을 잊을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이만 되었으니 그만 돌리자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멀었으니 미친듯이
계속 돌리자고 한다는... 결국 그말이 혁명의 본질이고 또한 <테르미도르>를 유유히
관통하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아, 알뤼느는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북해의 별>의 에델보다야 발전했을지 몰라도
알뤼느는 약혼자를 잃고 혁명의 반대에 섰다가 사랑에 의해 다시 노선을 바꾸는
주체성 없는 여성으로밖에 내게 어필되지 못했다. 알뤼느가 소서노가 되려면 아직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하는 것인가 보다.


이 글은 8/16/2001 에 쓰여진 글입니다.

Posted by haleyeli